<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윤복 수기)의 윤복.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염재만 원작)의 영출, <엄마 찾아 삼만리>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원작, 원제: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의 마르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 (요한나 스피리 원작)의 하이디, <집 없는 아이> (엑토르 말로 원작)의 레미,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소공녀> (프란시스 버넷 원작)의 세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아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플란다스의 개> (마리 루이사 드 라 라메 원작)의 네로, <성냥팔이 소녀> (안데르센 원작) 등, 제목을 이루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린이를 소재로 한 동화나 영화가 많다.
<프란다스의 개> 영화 포스터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인 어린이가 부모를 잃거나, 부모가 생존해 있다 해도 헤어진 상태라 고통과 슬픔을 겪는 것이다. 동화라는 특성 때문에 <프란다스의 개>의 네로와 <성냥팔이 소녀>를 제외하면, 주인공들 대부분은 고난을 겪다가 용기를 잃지 않는 착한 성품 덕분에 결국 행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상태, 혹은 어른이 되기까지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 견디기 힘들고 냉랭한 곳일 뿐이다. 추운 겨울, 쓸쓸히 죽어가는 네로와 성냥팔이 소녀를 천사가 따스한 하늘로 데려간다 해도 내 마음엔 늘 안타까움과 애잔함이 남아있다.
찬바람 이는 모진 세상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숨을 거두는 네로와 성냥팔이 소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사무치게 가슴 아리고 슬프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사랑받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안데르센 원작 <성냥팔이 소녀> 삽화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는 ‘악마’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나 지역 어른들은 이 아이들을 ‘저주받은 악마’라 부르며 학대하고 집단 폭행한다. 아이들에게 들어있는 악마를 쫓아내겠다고 주술적인 의식을 하며, 가학적 행위나 신체 훼손도 서슴지 않는다.
그 아이들 또래 자녀가 있는 부모들도 그런 야만적 행위에 동참한다. 아이들이 고통을 못 이겨 울부짖어도 누구 하나 돕거나 동정의 손길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렇게 내몰리는 이유는 단지, 그들을 돌봐줄 부모나 보호자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일이 시작된 건 르완다 등에서 일어난 무서운 내전 때문이었다. 증오와 살육에 눈먼 자들이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총칼을 주고 판단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사람을 죽이게 한 데서 시작됐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아이들로 하여금 이웃 사람과 친구를, 그들에게 협조 안 하는 사람들을 아이들 손으로 살해하게 했다. 오랜 내전이 끝나 아이들에게 고향과 집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성이 파괴되고 신체적으로 불구가 된 이 아이들을 부모나 친지조차 거부해서 그 많은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결국 이 아이들은 ‘악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세월이 지나 아이들은 심신이 피폐해진 어른이 됐지만, 그 경우와는 달리 단지 부모가 없거나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불쌍한 아이들을 계속 저주받은 아이들로 만들고 있다.
언젠가부터 돈에 눈이 먼 파렴치한 이들이 이 아이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흙을 파면서 땅 밑으로 내려가는데, 깊이가 깊어지면 나올 수 없으므로 몸에 밧줄을 묶고 이마엔 조명등을 붙인 채 호미 같은 연장으로 파 내려간다. 땅속은 어둡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좁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어른들은 ‘악마’라고 불리는 아이들 몸에 밧줄을 묶어 내려 보낸다.
한 명 혹은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호미 같은 연장으로 판 흙을 통에 넣으면, 어른들은 파 올린 흙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는다. 몇 분을 견디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땀을 흘리고 호흡곤란을 겪는다.
잠시 지상으로 오를 때면, 아이들은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현상은 그토록 고통스러운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천진하게 웃는다. 왜일까? 아이들이 웃는 이유는 그토록 모질게 학대하던 어른들이 그 순간만은 자신들을 보며 흡족해하는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21세기 바로 지금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도에서는 아이들이 가족 생계를 위해 쓰레기장을 뒤진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어린이의 권익과 교육을 위해 노력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척박한 노동현장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학교는커녕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걱정스러운 점은 최근 들어 유난히 아동 학대, 어린이 살해사건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계모 혹은 계부, 친부모가 가해자며, 학대 방법도 잔인하고 엽기적이라 사건을 볼 때마다 경악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다.
태어난 지 몇 개월 채 되지 않은 아기부터 예닐곱 살 되는 피해 어린이들은 닫힌 공간인 집 안에서 법적으로는 가장 가깝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로부터 무자비한 폭력과 악랄한 고문과 같은 학대를 당하며 생명을 잃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에 전율한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일들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고통받고 신음하는 어린이들이 있을 수 있기에 마음이 몹시 무겁다.
여린 새싹과도 같은 모든 어린이들에게 부모나 친척은 물론이거니와 이웃과 사회, 국가 전문기관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어야 하고, 학대의 징후가 보이는 경우엔 강력한 힘으로 제재하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해 연말, 어느 신문에서 우리나라 보육원 실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겨울 추위 속 보육원에 예산 지원비가 적고 그들을 찾는 후원자들 발길도 뜸해 아이들이 추위에 떨거나 간식이 부족해서 보육원 직원들이 박봉을 쪼개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한다고 했다. 일부에 국한된 기사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보육원에 머무는 아이들은 저마다 아픈 상처를 지닌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 아이들이 보육원에서는 편안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밝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복지부는 충분한 경제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자선단체나 독지가가 보육원을 찾아 도움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국가정책으로 예산을 세워야 한다. 보육원 아이들도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미래며 굳건한 시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주위에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나 독거노인 등에게 여러모로 지원할 계획이다. 아직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희망사항이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열려 있으리니!’ 언젠가는 그렇게 할 시간이 오리라 확신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좌절하거나 지친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말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쁨이고 행복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