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가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가 내가 가치를 두는 곳이다’ 라고 했는데, 오 정말 명쾌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회고 모임에서 내가 돈 쓰는 곳, 연말도 다가오니 올해 가장 큰 소비를 회고해보자고 얘기가 나와서 올해 내가 어디에 돈을 많이 썼더라? 생각해봤다.
1. 거주 공간
올해 가장 큰 소비(?) 혹은 지출이라고 하면 당연히 집 구하기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생애 두번째로 구하게 된 나의 독립 하우스. 내 집 아니고 전세이긴 하지만.
금액으로 따지면 아무것도 집을 이길 수 있는 건 없겠지. 전세금으로 현재 내 자산 거의 대부분이 묶여있고, 매달 20만원 정도의 공과금+관리비를 내고 있다. 고정 지출이라서 평소에 의식하지 못 했는데 새삼 이 또한 작지 않은 금액을 내고 있었구나 알게 됐다. 나를 편안히 먹이고 입히고 쉬고 눕게 하기 위해서 매달 지불하고 있는 비용이 이 정도구나 생각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의 가치를 더 자각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영국 가기 전에 첫 독립 하우스를 꾸미면서 간단하지만 나름 가구를 이것저것 사서 이번에는 최대한 있는 가구를 활용하고 새로운 것은 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필요한 게 또 나오긴 하더라. 망가져서 버린 식탁을 새로 사고, 수납이 이전 집보다 부족해서 책장과 수납장을 조금 더 사고, 로망이었던 쉬폰 커텐도 새로 달았다. (이전 집과 달리 이 집엔 커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가구 배치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이디어가 없어서 숨고에서 홈스타일링 서비스를 그나마 저렴하게 찾아서 서비스 받았는데, 방문 측정, 가구 추천과 3가지 배치도 만들어주는 데 20만원 초반, 결과물이 만족스러워서 아깝지 않은 소비였다. 가장 처음 독립하우스 때도 홈스타일링 서비스를 받아본 적 있어서 서비스 효용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고, 역시나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와서 하길 잘 했다고 생각중. 내가 하기 어려운 일, 내 재능 밖의 일(ex: 인테리어..)은 적극적으로 전문가에게 외주를 맡기자고 생각하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집 꾸미기에 스타일링 비용 + 가구 구매에 60만원 정도가 들었다.
원래 집 꾸미기는 더 적은 비용으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가구들이 살 게 있어서 조금 더 들긴 했다. 매일 사는 집인데 아깝다고 안 쓸 수 없는 비용이라 후회는 없다. 삶의 질, 가심비 올려주는 아이템에는 매우 관대하게 소비하는 편이다.
2. 워치, 아이패드
테크 기계를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게 워치였다. 뭐 운동할 때 편하고 심박수도 체크해줘서 좋다고 하는데 내가 운동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건강 모니터링 같은 것도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라서 절대 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슬슬 ‘사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더니 결국 사게 됐다.ㅋㅋㅋ
발단은 업무였다. 불시의 시간에 긴급 상황 발생이 종종 있는 부서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핸드폰 메시지 알림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데, 난 발레 클래스를 해야 한단 말이지..? 클래스가 보통 80분에서 90분이라서 그 시간 내내 핸드폰 알림을 받지 못 하고 있는게 불안하기도 하고, 혹시 연락이 올까봐 클래스에도 잘 집중이 안 되기도 해서 ‘워치를 사야하나’ 생각하다가 결국 샀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한 비용이라 생각하고.. 막상 사보니 왜 그렇게 편하다고들 했는지는 알 것 같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바로 한달 뒤 아이패드도 사게 됐다. 5년된 아이패드를 아직 짱짱하게 잘 쓰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나도 모르는 새 액정에 뭔가 충격이 갔는지 전면 카메라 부분 액정에 미세한 금이 간 상태였다. 그래서 전면 카메라가 안 나오고, 액정에 금이 가긴 했지만 워낙 사이드라 보는 데 지장이 없어서 그냥 쓸 때까지 쓰고 버리든지 바꾸든지 해야지 했는데, 최근 우연히도 엄마가 집에 왔다가 아이패드가 있는 것을 못 보고 깔고 앉는 사태가 발생 ㅋㅋㅋ 사이드 조금이었던 액정 깨짐이 이제 화면을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태로 확장되어버렸다.
사실 아이패드를 별로 활용하고 있지 않아서 다시 살 지 말 지 고민했는데 막상 없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 결국 다시 샀다.
게다가 기왕 사는 거.. 내가 원래 쓰던 가장 최고사양 모델(프로)의 신제품을 살 것인지 그 아래 모델(에어)을 살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최고사양 모델을 샀다. 사람 마음이… 나에게 오버 스펙이란 걸 알고 있지만, 기왕 하나 아래 모델을 살 바에야 몇십만원만 더 얹으면 훨씬 고사양의 패드를 살 수 있는데? 이게 가성비 이득인데? 라는 생각에 최고사양을 사게 되더라. ㅋㅋ
동생이 이런 나를 보고 모닝 사려다가 롤스로이스 살 사람이라고 혀를 찼지만 ㅋㅋ 사람이 한 번 좋은 걸 경험하고 나면 다시 그 아래로 낮추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결국 전혀 계획에 없었지만 올해 애플에 200만원 정도를 지출.. ㅎㅎ
테크 못 잃어 -
3. 공연
상반기에는 공연 욕구가 전-혀 없었는데 하반기 들어서 무기력 탈피에 효과가 있다는 걸 느끼고 공연을 꽤나 많이 보러 다녔다.
9월말 반지의 제왕 필름 콘서트를 시작으로 10월 초 유니버설 발레단 라 바야데르, 10월 이적 콘서트, 10월말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 그리고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로 피날레..
티켓 가격을 다 합하면 이 또한 수십만원은 쓴 셈이다. 그치만 원래는 (반지의 제왕 제외) 돈을 더 줘도 이미 매진이라 볼 수 없는 공연들이었기에 나의 체감 가치는 거의 수백만원 - 올해 제일 최강 가심비 소비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립발레단 공연은 두 월드 스타 김기민-박세은 페어 덕분에 결국 내 특기인 취소표 줍기마저 안 될 정도로 너무 인기가 많아서, 당일 새벽 6시반부터 예당 앞에 줄 서서 번호표를 받은 끝에 현장에서 160석 정도 판매되는 시야제한석을 구해서 봤다. 정작 티켓 가격은 시야 제한석이라서 만원이었는데, 올해 가장 잊지 못 할 소비 -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내 소비 성향이 어떤지,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가 뚜렷하게 보인다.
1) 삶의 질을 올려주는 소비라면 아끼지 않는다. 매일의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거나, 주관적인 만족도를 올려주거나 (즉, 편리함을 주거나 심지어 ‘그냥 예쁜‘ 가구, 소품 등),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소비한다.
2) 이런 차원에서 돈을 조금 더 보태거나 내가 생각한 예산을 초과하더라도 차라리 100% 만족하는 물건을 사는 편이지, 예산에 타협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실제 비용보다는 내 주관적인 만족도가 더 중요하다.
3) 가심비 소비를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무언가 유형의 물건이 남지 않아도, 공연 관람에 소비하는 것은 아깝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내가 돈 쓰는 가장 큰 부분은 거의 죄다 내 만족을 위한 것들이다. ㅎㅎ
원래도 내 한 몸만 잘 챙기자,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니 일단 나부터 행복하자 이런 맘으로 나한테 잘 해주고 나만 잘 챙기는데 거리낌이 없는 편인데 소비 성향에서도 그게 너무 드러나서 재밌었고, 원하는 방향대로 잘 살고 있구나. 나도 참 한결 같다 싶었다. ㅎㅎ
주변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 낳기 전에는 내 옷 사고, 나를 꾸미는 데 대부분 소비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사는 것 대부분이 아이 것만 사게 되고, 내 것은 별로 예전처럼 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 같지는 않은 일이라 나보다 더 소중한 다른 누군가나 무언가가 생기기 전까지 한동안 이런 소비 패턴이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 소비 패턴이 달라지는 날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 바뀌는 날이겠구나 싶다. 아직은 상상되지 않는 날들이긴 하고, 지금 생활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니 계속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하면서 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