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장모님은 아내를 가졌을 때 입덧이 심했다. 그래서일까 임신 중 아내의 입덧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요즘은 입덧을 덜어주는 약이 처방되지만 당시에는 입덧을 위한 약이 나오기 전이라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입덧은 임신 6주 차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음식에 냄새가 역해지고 메스꺼움이 심해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하루종일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쓰럽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덧 방지 팔찌를 사용하기도 했다. 애플워치같이 생긴 팔찌인데 손목에 전기신호를 보내서 입덧을 완화시킨단다. 효과는 의심스럽지만 방법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 효과를 봤다는 사람도 있어서 약간 기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아내의 입덧은 날로 심해지기만 했다.
음식을 먹지 못하니 아내의 몸무게는 무섭게 줄었다. 임신 6주 차 46kg이던 아내의 체중은 매주 1~2kg씩 줄어들더니 9주 차가 되자 42kg대에 들어섰다.
“많이 힘드시죠. 엄마가 음식을 먹지 못해도 아이는 이상 없이 잘 자랍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너무 힘드시면 수액 처방해 드릴게요.”
진료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이 비썩비썩 말라가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겠는가. 아내는 매주 산부인과 진료마다 수액을 맞으며 입덧을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나는 주말부부다 보니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이 떠 올라도 바로바로 사다 줄 수 도리가 없었다.
“오빠, 딸기가 먹고 싶어...”
“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다녀올게!!”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나 있는 이야기였다. 아내도 가끔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때가 있었지만 내가 집에 갔을 때에는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 아내가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생기면 사재기하듯 쌓아두게 되었다.
조금씩이지만 수박을 먹을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10kg 특등급 수박을 2통이나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꺼내 먹기만 하면 되도록 껍질을 다 벗기고, 깍둑썰기를 해서 락앤락에 담아뒀지만 반 이상을 그대로 버려야 했다. 아이비라는 비스킷을 먹을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옳다구나 하고 대형 번들을 사다 놓았지만 역시 거의 먹지 못했다.
어느 날 주말이었다.
“둥, 나 갑자기 토스트가 먹고 싶어 졌어.”
“그래? 잠시만 기다려! 내가 금방 사 올게!!”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날아가듯 달려 집 앞 카페에서 토스트를 사 왔다.
“이런 거 말고. 이삭토스트 있잖아? 그런 거 없을까?”
다행히 집 근처에는 이삭토스트 가게가 있었다. 왜 처음부터 거길 가지 않았을까? 급히 다시 다녀오니 아내가 말한다.
“소스 냄새가 이상해. 다른 토스트 없을까? 피클은 빼면 좋겠어. 미안해.”
마지막으로 찾아간 토스트집에서 피클을 뺀 토스트를 구해왔지만 결국 아내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급히 사 온 토스트 3개는 모두 내 몫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닐 수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가장 난처한 때는 따로 있었다.
“둥, 아빠가 만들어줬던 감자크로켓이 먹고 싶어.”
사다 준다 해도, 만들어 준다 해도 소용이 없다. 그때의 맛이 생각나서 먹고 싶다는데, 이럴 때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입덧으로 힘들어하던 아내가 유일하게 괜찮은 순간이 있었다. 모델하우스를 둘러볼 때다. 신기하게도 아내는 모델하우스를 돌아볼 때는 쉴 새 없이 걸으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마침 첫 아파트를 마련해야 할 시기였기에 산책도 할 겸 모델하우스 구경을 열심히 다녔다.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모델하우스 투어였다. 모델하우스에서 나눠준 사은품 덕분에 한동안 갑 티슈는 걱정 없이 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이때 계약한 곳이다.
임신 9주 4일째 되던 날, 2016년 7월 3일은 아이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아내와 외식을 성공했다.
“오늘, 설렁탕 먹어볼까?”
이틀 전, 겨우 두 숟갈을 먹고서는 다행이라 했던 아내인데 먼저 설렁탕을 먹자 하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다행히 그날은 아내도 나도 맛있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조금씩 나아지려나보다. 진짜 다행이야.”
나의 설레발 때문이었을까? 며칠 후 아내는 겨우 물 두 잔을 마시곤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아내가 입덧에서 벗어난 것은 그보다 훨씬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