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자리에 있었다구!

D+3318 첫째

by 바다별

"아! 리안아 아파!"


새벽 4시.

알람이 아니라 아내의 비명에 잠을 깼다.

"저리 좀 가!"

"엄마, 나는 내자리에 있었다구~."

"너가 팔로 엄마 눈을 쳤잖아."

요즘들어 한밤중 모녀의 투닥거림이 잦아졌다.

20kg을 눈앞에둔 초딩의 몸부림은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20260217_184825.jpg?type=w1 할아버지 생일파티. 기분은 어린이들이 더 낸다.

설날 아침, 할머니가 끓여준 떡국을 한 그릇 먹고 아이들은 또 부쩍 자랐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렇게 싫었던 말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쉽게 던진 듯 했던 그 말에

이토록 공감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모의 고생과 별개로 아이들은 쑥쑥, 알아서 잘 자란다.

옛말 틀린게 하나도 없다는 걸 이렇게 배워간다.




딸과 나는 종종 보드게임을 하는데,

나는 실력을 조정하며 딸을 상대해야 했다.

대차게 지고나면 완전히 떨어져 나갈것이 걱정되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몇판을 내리 지면 눈물을 글썽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벽을 느끼게 한 후, 마지막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보여주는 것이 레파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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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조커에 방패정도 있어야 이길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딸과 했던 게임은 완전히 반대다.

다섯 판 승부 중 네 판을 딸이 이기고, 마지막 한 판만 겨우 패배를 면했다.

전력을 다한 결과가 이렇다.

4연승 한 딸은 기분이 떠나갈듯 기쁘다.

마지막 한 판은 내가 이겼지만, 딸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한 판쯤 양보해도 괜찮다는 식이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깨방정을 떠는 딸의 모습에 내가 비친다.




20260218_183552.jpg?type=w1 레고 시리얼... 방에서 뚝딱거리며 온갖 잡동사니를 만들어 온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는 "그게 아니다"며 꼬치꼬치 따져 묻는 일이 늘었고,

분하고 억울한 일에 도끼눈을 뜨고 콧김을 뿜는 횟수도 많아졌다.

"아빠, 놀아줘." 보다 "들어올 때 노크해."라며 방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진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혼자 해내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자고일어나면 바지가 짧아져 있는 것을 보고선 '쑥쑥 자라는구나'라며 감탄했는데,

무섭게 자라는 것은 몸만이 아니었나보다.




20260123_191357.jpg?type=w1 딸아 발차기를 침대에서 하면 어쩌니...

"윽!"

딸의 곁에서 자던 어느 날 통나무 같은 허벅지가 날아들었다.

과연 아내가 비명을 지를만한 충격이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가 나서 다리통을 밀쳤다.

그러던가 말던가 딸은 뒤척이며 다시 자리를 잡는다.


돌아누운 딸의 뒷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얼마전 인터넷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아이가 갑자기 따로 자겠다 선언해서 충격을 받았다는 글.

이별은 그렇게 준비하지 못 한 때 갑자기 찾아온다.


한 침대에서 비비적 거리며 자는 우리 네사람.

이런 모습이 어쩌면 1년도 채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통나무 같은 다리에 몇 번 더 치이는게 대수일까.

돌아누운 딸의 등을 쓸어주며 조금 천천히 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네 자리에 조금만 더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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