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김리후야

D+2455 둘째

by 바다별

"나는 안 가고 싶어."

태권도 이벤트를 하루 앞두고 둘째가 꺼낸 말은 의외였다.


둘째가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이벤트를 열었다.

예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해마다 이맘때쯤 하는 이벤트였다.

같은 학교에 갈 친구들끼리 모여 학교가는 길도 걸어보고,

학교 생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시간도 갖는다.

친구들과 모여서 두세시간 놀다가 오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일인데 이상한 일이다.

감기기운 때문에 컨디션이 안좋은게 이유일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가면 자기소개 해야한단 말이야."

누구나 낯설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둘째에게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그랬나보다.




그날밤 둘째와 둘이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

"리후야. 자기소개 걱정돼?"

"하기 싫어."

"아빠랑 같이 연습해보자. 뭐부터 해야할까?"

"...몰라."

"인사부터 하는게 좋겠어. '안녕, 나는 김리후야' 하는건 어때. 다음은 뭐하지?"

"좋아하는 거?"

"리후 뭐 좋아해? 색깔? 음식?"

"나 레고 만드는 거 좋아."

"그럼 '안녕 나는 김리후야. 레고를 좋아해' 하면 되겠다. 다음은 뭐하지?"

"인사..?"

"맞아! '안녕 나는 김리후야. 레고를 좋아해. 친하게 지내자' 어떄?

"좋은 것 같아."

"그럼 우리 이어서 연습해볼까?"

"안녕, 나는 김리후야. 레고를 좋아해. 친하게 지내자."

아들과 나는 침대에 누워 3번 더 연습하고 함께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들은 아침 식사를 하다말고 갑자기 생각난듯 말했다.

"아빠! 나 어제 연습한거 기억하고 있어!"

그리곤 연습했던 자기소개 3문장을 자신있게 말한다.

"그래, 그렇게 하고 와. 잘할 수 있을거야."


그날 신입생 이벤트에서 둘째는 자기소개를 훌륭하게 마쳤다.

연습했던 것과 달리 정해진 멘트를 보고 읽는 방식이었지만,

스스로 외워갔던 만큼 훨씬 더 자신있게 발표할 수 있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 있다.

성미에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아직 낯설어서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대부분은 후자의 경우였다.

일단 용기내어 경험해보면 별 것 아니었거나, 오히려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가끔 정말로 싫은 것이 분명하다해도 얻는 것은 있었다.

내가 싫은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럿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둘째에게 어느 쪽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우선 한 번 해보았다는 것만으로 칭찬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여전히 그런 매일를 보낸다.

새롭게 시작하는 많은 일들은 항상 행동을 주춤하게 한다.

우선 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머릿속 생각과 달리 마음은 계속 꽁지를 빼고 도망가려한다.

그럴 때 곁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 가족 아닐까.


용기내어 발표를 마친 둘째를 보고서,

나도 한 발 내딛을 용기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