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49 / 첫째
마이디폼블럭 이라는 어린이들 장난감이 있다.
가로세로 8mm의 작은 블럭을 서로 연결해서 모양을 만드는 퍼즐같은 블럭이다.
꽤 오래전부터 있던 장난감인데 둘째 어린이집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걸 보니 꽤나 스테디셀러인 듯 하다.
둘째는 유난히 레고 같은 블럭류를 좋아한다.
마이디폼블럭도 완전히 취향저격이라 어린이집 놀이시간에는 늘 이것만 가지고 논다고 한다. 둘째 말로는 다른 친구들도 마이디폼블럭을 제일 좋아한단다. 하원 때마다 손바닥 만한 작품을 하나씩 들고 오는데, 내심 '다들 저렇게 챙겨가면 블럭이 남아날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다.
둘째가 팽이를 만들어 온 날이었다.
납작한 블록만 있는 줄 알았는데 왠 걸 팽이를 만들 수 있는 부품도 있을 줄이야;;
나도 신이나서 둘째와 팽이를 돌리며 놀고 있는데, 첫째가 종이 한장을 들고 와서는 둘째에게 내민다.
“김리후, 개햑서에 사인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첫째가 내민 종이를 살펴보고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째도 블럭으로 만든 팽이가 신기했나보다. 첫째 때문해도 팽이 부품은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제 것도 하나 갖고 싶어진 첫째가 둘째를 붙잡고 신신당부 했지만 둘째의 대답이 영 시원찮았다.
눈은 TV를 향하고선 "응, 알겠어"라며 힘없이 대답하는 꼴을 봤다면, 아마 누구라도 못미더웠을 거다.
결국 첫째는 말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계약서까지 만들어 내민 것이다.
제목은 '개햑서'지만 내용은 영락없이 계약서다.
꼼꼼하게 그린 요구 스펙 설계도도 붙어있고 발주자의 서명도 포함되어 있다.
생일은 주민등록번호 대신 넣은걸까?
아직 사인이 힘든 둘째는 사인 대신 동장을 찍었다.
(도장 아님;;)
이튿날,
둘째는 개햑서를 챙겨들고 어린이집에 등원해서 설계도 대로 첫째의 팽이를 만들어 왔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운다.
쓸데없는 다툼을 피하고 싶다면,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계약은 필수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