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285 둘째
우리집 아이들은 평일 저녁에는 거실에 모여 공부한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샤워를 마치면 8시가 되는데 이때 공부를 시작해서 9시 30분에는 끝내는 편이다.
공휴일을 제외하면 예외가 없는 이 규칙은 첫째가 한글을 배울 때부터 시작했다. 똑순이 첫째는 배 아프다 누웠다가도 저녁공부는 빼먹지 않았고, 둘째는 부지런히 습관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공부하다 졸릴 때마다 둘째가 하는 말이 있다.
"왜 나는 계속 졸리지? 왜 나만 졸리지?"
천근만근 되는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쏟아낸다. 마주 앉아 공부하는 누나도 있고 옆에 아빠도 있는데 자기만 눈이 감긴다며 이상한 불평을 늘어 놓는다.
그래도 요즘은 정말 잘 견디는 편이다.
잠이 많은 둘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공부하려 앉을 때 마다 눈이 감겨 힘들어 했다.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앉았다 하면 졸았는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면 나도 속에 천불이 났다. 그때를 생각하면 요즘은 괄목상대가 따로 없다.
이틀 전, 아이들 공부 시작이 늦어진 적이 있었다.
아내와 내가 다른 일을 하느라 30분 정도 지연되었고 둘째는 그 사이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예전같았다면 잠든 둘째는 그냥 뒀겠지만 이번에는 한번 깨워보기로 했다. 첫째가 그런 나를 보곤 "리후는 못 일어날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리후야, 그냥 잘래? 아니면 공부할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슬쩍 둘째를 깨워보았는데 이게 왠일?! 둘째는 너무나 쉽게 잠을 털고 일어났다.
“하고 잘거야” 라며 눈을 뜬 둘째는 한글공부, 더하기 공부에 어린이집 받아쓰기 연습까지 기분좋게 마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아빠~ 나 받아쓰기 몇점 받았게??
며칠 후 저녁, 받아쓰기 시험지를 꺼내드는 둘째의 목소리에 웃음이 베어있다.
"연습할때 계속 60점이었는데, 100점 받았어~!"
둘째가 내미는 100점짜리 받아쓰기가 더욱 대견한 것은 밤마다 졸음을 참아가며 공부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내가 7살 때, 9살 때 어떤 저녁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밤마다 제 자리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두근대며 기대하게 된다.
어른이 된 후, '하루를 쌓는 꾸준함'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렇게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쌓아가면 도대체 그 끝은 얼마나 대단해질까?'
나는 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끝을 가늠해 볼 수도 없다.
'잘은 모르지만 보통은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설렘을 안고 기다려 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