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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Jul 04. 2024

힐링되는 날

 삐, 삐, 삐, 삐, 드르륵~~~ 

 오전 11시, 남편이 퇴근했다. 출근을 한 지 네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불쑥 퇴근을 하고 현관으로 들어선 것이다. 나는 놀라 쳐다보고 남편도 아직 출근하지 않은 나를 발견하자 순간 흠칫한다. 

 “아직 안 갔네....” 

 “어. 오늘은 늦게 출근해도 돼서.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나도 모르게 시큰둥한 목소리가 나왔다. 사실 조선소를 다니는 남편은 일이 연결이 되지 않으면 일찍 퇴근하곤 했다.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일찍 왔어’라고 말을 한 것이다. 아마 ‘아침에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왜 방해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도 나름 눈치가 있는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틀지 않고 안방으로 직행했다. 주말 동안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에너지를 쏟은 터라 오늘 아침은 조용히 회복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순간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듯했다.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고 있으려니 뭐 하냐며 기웃거렸다. 컴퓨터를 끄고 책을 읽으려 니 무슨 책이냐고 말을 걸었다. ‘그냥’을 반복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었다. 회사가 연초에 단가를 너무 올리는 바람에 월급이 제날짜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한화에 친한 동생이 자꾸 오라고 해서 그쪽으로 알아본다고 했다. 내가 멀뚱하게 쳐다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책임감이 높은 남편의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커피 마실래?” 

 나는 책을 덮고 신랑과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다. 막내가 학교를 너무 일찍 간다는 이야 기, 에어컨을 청소할지, 바꿀지 고민된다는 이야기, 이 집에서 오래 살았는데 이사 가고 싶다 는 이야기, 이사를 간다면 어디를 가고 싶냐는 이야기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주고받았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랜만에 그 식당에서 점심 먹는 거 어때?” 

 “그러자. 밥은 내가 살게. 커피는 당신이 사.” 

 우리는 오랜만에 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평일 오전의 커피숍은 한가하고 여유롭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힐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갑자기 퇴근한 남편이 나의 시간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로 살아가는 시간 속에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힐링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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