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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망 Nov 18. 2021

머릿속의 목소리를 놓아주는 법

에세이

    밤에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어도 내 생각은 어떻게든 밀린 방학 일기를 끝내려는 아이처럼 쓸데없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평상시에 내 머릿속은 생각들이 언어화되지 않은 채 무의식이라는 안갯속을 부유하는 공간이라면 잠이 오지 않을 때의 머릿속은 꺼지지 않는, 강제 종료가 불가능한 고장 난 스피커로 가득 차 있는 방이 된다. 머릿속 목소리는 말을 씹거나 발음을 뭉개는 법 없이 단어 하나하나 또렷하게 발음한다.

    때로는 생각이 목소리가 아닌 문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머릿속에서 문자들은 하얀 워드 파일에 글자가 자음-모음-자음 순으로 새겨지는 것처럼, 바닷속에 잠겨있다가 썰물 때 물이 빠지며 드러나는 돌처럼, 알파벳 모양 시리얼에 우유를 부으면 소용돌이치며 가라앉다가 곧 잔잔해진 하얀 우유 위로 떠오르며 모양이 나타나는 것처럼 생겨난다. 내가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인지하면 그 또렷함은 배가 된다. 머릿속 목소리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생각을 읊어댄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생각 이제 그만하자. 벌써 새벽 세 시야. 이제 생각하지 말고 자자.’라고 읊는다. 그리고 ‘아니 근데…’로 다시 읊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머릿속 목소리에 질려서 미쳐버릴 것 같다. 지긋지긋해진다. 나는 내 머릿속에 갇혀, 내 뇌만큼 작은 공간에서 울리는 목소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방법을 간구한다. 여러 시도 끝에 방법 몇 가지를 찾았다.


1

    자연스레 가장 먼저 발견한 방법은 그냥 포기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울리는 목소리와 끈질기게 싸우다가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하고 있으면 목소리가 나를 놓아준다. 사실 첫 번째 방법이라고 써놓았지만 도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다. 자의적으로 목소리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 채로 목소리가 먼저 물러나길 기다려야 한다. 주체성이 1도 없다. ‘나 포기해야지’라고 생각하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항복을 선언해봤자 언제 물러날지는 승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저 떠들어대는 의식이 자신의 승리와 함께 떠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의식이 떠나가는 시간은 보통 새벽 4시나 5시쯤이다.


2

    두 번째 방법은 머릿속의 목소리를 토해내는 방법이다. 불을 켜서 일기장을 펼쳐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미친 듯이 펜으로 옮긴다. 그전까지는 매달릴 것이 없어 머릿속에서 발화되고, 문자화 되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쿵쾅대던 언어가 머릿속 공간 안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손을 움직여 부지런히 적는다. 글을 쓰면 두더지 게임처럼 난데없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던 생각들이 한 구멍을 통해서만 튀어나온다. 하나의 생각에 다른 생각들이 매달려 연관된 글을 이룬다. 질서를 잡는다. 그렇게 글을 쓰며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침대에 누울 때 머릿속이 그리 시끄럽지는 않다. 다시 시끄러워지기 전에 얼른 잠들어야 한다.


3

    글을 쓰는 것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귀찮다. 불을 켜고 일기장을 펴서, 손에 힘을 주고 팔을 부지런히 움직여 써야 하는 노동이 수고스럽다. 게으른 나는 결국 손가락 까닥하지 않고 머릿속 목소리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제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찾아오면 내 의식을 나의 몸을 벗어나,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벗어나, 내 방과 집과 도시와 대한민국을 벗어나도록 상승시킨다. 꼭 잡고 있던 헬륨 풍선을 놓아주듯 두둥실 떠오르도록 한다. 작은 공간 안에 갇혀 울려대던 의식은 어느새 지구를 내려다보고, 태양계를 벗어나고, 무한한 우주로 확장된 내 머릿속 안 공간 둥둥 떠다닌다. 이런 상상은 언어나 문자로 떠오르지 않는다.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그 장면을 그려내 그 안에서 부유하고 있으면 다시 조용해진 머릿속과 마주할 수 있다.

    무한한 우주, 무한한 검은 배경 속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 내 의식이 있다. 내 의식이 있고, 내 육체도 있다.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몸이 있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몸은 내 방과 집과 도시와 대한민국 안에 있다. 나는 무한한 우주에서 다시 내 침대로 무사히 귀환한다. 하지만 내 의식은 그대로 우주에 있다. 그래서 우주는 내 머리와 연결된다. 마치 누워있는 내 이마 위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날 정도로 엄청나게 길고 투명한 원통이 얹어져 있듯이. 무게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그 원통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통로여서 저 멀리에 있는 무한한 검은 배경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이 그 안에 담겨있다. 원통으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나는 내 의식을 자꾸 우주로 풀어줄 수 있다. 사방의 벽에 자꾸 반사되어 울리던 머릿속의 목소리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는 아주 작은 속삼임으로만 존재한다.

    그럼 나는 그 속삭임을 뒤로한 채 잠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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