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속에서 피어난 사랑
현재 우리 집에는 브랜드가 서로 다른 쌍화차가 두 종류가 있다. 어머니가 하나를 먼저 사고, 그 다음에 또 다른 하나를 사신 것이다. 나는 그 중 A브랜드를 좋아하고, 어머니는 B브랜드를 좋아한다. 나는 A브랜드 것이 맛있고 B브랜드는 맛이 없다고 말하고, 어머니께서는 반대로 A브랜드 쌍화차는 도대체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르신다. 이미 수도 없이 벌어진 일이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굉장히 신기하다. 사람의 취향이 이렇게 정반대일 수도 있구나. 내겐 너무나 별로인 이것이, 저 사람에게는 너무나 훌륭한 것이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우리는 MBTI 상으로 완전히 정반대다. 어머니는 ESTJ, 나는 INFP. 하나도 겹치는 글자가 없다. 우선, INFP인 나는 몽상적이고 평화를 추구하는 유형이다. 인간관계가 좁고 깊고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잘 받는다. 반면에 우리 어머니는 목표 지향적이며 체계적이고 자기 확신이 강한 유형이다. 내가 성인이 되어 내 성격이 거의 형성되었을 무렵부터 우리는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주로 튕겨 나가는 쪽은, 당연하겠지만 나였다. 내가 어머니의 자식이기도 했고, 성격적으로도 훨씬 약했다. ESTJ는 MBTI에 속한 16가지 유형 중 가장 기가 센 유형인 반면, INFP는 이른바 유리멘탈이라고 불린다.
나는 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께 말로 자주 얻어터졌다. 정신적으로 탈탈 털렸다. 나의 20대는 눈물 없이 보낼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문학과 미술을 좋아하지만 당시 그에 걸맞은 실력은 슬프게도 없었다. 그러나 다른 일과 공부를 시작하려다가도, 결국은 문학과 미술로 돌아오는, 고집만은 더럽게 센 청춘이었다. 우리 어머니 유형인 ESTJ는 합리적이지 않은 고집을 무척 싫어한다. 게다가 가치관 자체가 성과주의이기도 하고 실력주의이기도 하다. 실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지 하고싶은 거 다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으냐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뿐인 딸이니 경멸하진 않으셨겠지만, 나는 어머니의 차가운 태도에 마음을 많이 다쳤다.
게다가 나는 그 당시 이미 다른 사람들로 인해 마음을 많이 다쳤던 때이기도 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인프피는 상처 받으면 지독히 오래 간다. 괴로웠던 나는 집에 처박혀서 글만 쓰고 그림만 그리는 외로운 삶을 지속했다. 반면에 우리 어머니는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 사람들은 멋진 어머니를 따랐고 또 존경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왜 저 모양일까 싶으셨을 것이다. 지인들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잘 되는데, 왜 쟤는 저럴까, 싶으셨을 것이다. 많이 외롭고 쓸쓸하고 속상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더 쌀쌀맞게 대하셨던 것이다. 그 마음을 이젠 나도 이해하겠다. 조금은.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았고, 그걸 서로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가 남들 어머니처럼 따스하게 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시길 바랐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말했다시피 나를 보면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쉬고 싶은데 자꾸 못난 딸이 찡찡대니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원래 그런 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건데 말이다. 말 그대로 파국이었다.
그런데 MBTI 궁합표를 찾아보면, 두 종류의 궁합표가 나온다. 좀 더 보편적인 궁합표에 따르면, INFP와 ESTJ가 상극으로 나온다. 만나면 파국이 되니 절대 만나지 말라는 거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 궁합표에서는, 최상의 관계로 나온다. 서로의 약한 점을 서로 가르치면서 보완해 줄 수 있는 최상의 궁합이라는 거다. 내가 몇 년 전에 이걸 봤다면 전혀 믿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부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최소한 이제 이 두 유형의 만남이 파국만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이렇게 된 거다. 저녁시간이 되면 나는 어머니에게 나의 철학적인 고찰, 삶에 대한 깨달음 등을 이야기하면서 찡찡댄다. 그럼 어머니께서는 몹시 화를 낸다. 안 그래도 회사일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뭐하냐는 거다. 너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늘어놓으면 사람들 부담스러워서 다 떨어져 나간다는 거다. 나는 어머니께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린다. 그게 한 100번 정도 반복되었다. 어떤 분들은 우리 어머니께 공감하며, 100번씩이나 그런 이야기를 했던 내가 답답하실 것이지만, 성격적인 거라 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완전히 혼자였다. 그렇지만 사람은 혼자가 되면 살 수 없다. 당시 내겐 나 아닌 사람들의 공감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어머니께서 내게 너무 차갑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당시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마음이 너무 괴로우셨다고 한다. 뭐, 사실 원래 엄청 차가운 분이시긴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굉장히 괴로워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일이 100번 이상 반복되자, 나는 서서히 내 철학적이고 심오한(?) 긴 이야기를 짜증 없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사실을 학습하게 되었다. 그리고 간혹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상황과 여건, 사람들이 허용해 줄 때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예도 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문제상황을 늘어놓으며 위로해줄 것을 요구할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단호히 말하신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이건 내가 원하는 위로 방식이 아니다. 경청과 공감을 원하는데 어머니는 계속 “그래. 그게 문제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건데?” 하신다. 나도 처음엔 짜증을 냈지만, 이런 사고방식에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를 들이미는 건 어머니께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학습한 이후에는, 나는 문제를 파악한 뒤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아내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어머니께서 날 살리신 셈이다. 그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얘기만 해서 폐를 끼치지 않게 되었고, 또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난 요즘 INFP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마 예전보다는 굉장히 활기찬 성격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어머니 덕분에 부정적이고 어두웠던 모습이 많이 개선되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반면에 어머니께선 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다 본인 같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셨다. 우리 어머니께선 나를 이해하려고 책을 보시고 코칭 교육까지 받으셨다(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지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엄격한 성과주의와, 심각한 일중독도 많이 느슨해졌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이 모든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INFP와 ESTJ의 만남이 무조건 파국일 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계는, 한마디로 말하면, ‘발전적이었다’. 이토록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웠으니 말이다. 꼭 인프피와 엣티제 만이 아니라,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든 간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더 가까이 한다면, 삶은 더 다양하고 발전적이며 눈부신 것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있어 지구는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노력과 장점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단점을 보완해준다면 이 지구는 더 사랑스러운 곳이 될 것이다.
-2024.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