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아침 햇살은 한여름의 태양만큼이나 따갑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밭에서 풀 뽑기에 여념이 없다.
한 포기의 뿔을 뽑을 때마다 내 마음의 번뇌를 떨쳐 버리 듯 개운하고 시원하다. 간간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도 고맙다.
문득 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풀들도 제각각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명아주, 애기똥풀, 가시 덩굴손, 그리고 민들레...
풀들 중에도 민들레나 애기똥풀 같이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우리는 그 많은 풀들을 뭉뚱그려 잡초라 부른다.
세상의 변방에서 잡초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함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도 나름의 꽃을 지녔고 악착같이 살아가려는 약자들이다. 풀들처럼 고단한 삶을 사는 그들의 삶도 소중하리라.
초보 농부의 최대의 딜레마는 풀과의 전쟁이다.
풀들은 자라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한 여름 비 오고 난 후에는 일주일만 지나도 풀이 무릎까지 자랐다.
매주 밭에 오면 하루 종일 예초기만 돌리다 돌아간 적도 허다했다.
작년 봄 대파 모종을 심어 착실하게 키워서 한동안 식탁의 대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여름이 오고 풀들로 뒤덮인 대파밭은 초보 농부의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그 최후를 맞았다.
땅콩밭의 김매기를 하면서 낙화생의 의미를 생각했다.
대부분의 식물은 꽃이 피고 하늘을 보며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땅콩은 꽃이 피면 자방병이라는 것이 땅속으로 내려가 땅콩을 맺는다. 그래서 낙화생이라 하는 가 보다.
세상살이가 싫어서 지하로 내려가 잘 영근 땅콩을 만들어 내는 땅콩의 의지가 가상하다.
문득 땅콩 두 알의 의미가 생각났다.
그렇다. 땅콩은 두 알이 정답이다. 서로 정겹게 오손도손 두 알의 땅콩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더 이상 심심풀이 땅콩이라 부리지 않으리라.
옆 고랑의 감자를 본다. 어느새 쑥쑥 자라 벌써 메추리 알만한 감자가 달렸다. 감자꽃이 예쁘다. 못생김의 대명사인 감자에게 이런 예쁜 꽃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감자를 보면 북돋우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힘이 부칠 때 누군가 북돋우어 주면 더욱 기운을 낸다.
감자에 흙을 더 덮어서 북돋워 주면 더 많은 결실로 보답한다.
양배추 주변에 하얀 나비가 날아다닌다.
나비는 항상 우리에게 즐거움의 대상이었다.
꽃을 보고 나풀거리는 나비의 유영은 잠시 피곤함도 잊게 해 주지만 양배추 밭의 나비는 병충해의 원인이다.
더 이상 하얀 나비가 반갑지 않다. 인간의 마음은 이리도 간사한 것인가?
봄 농사를 준비하며 밭에 퇴비를 뿌리고 비료를 치고 밭을 갈아엎어서 파종을 준비했다.
그 퇴비와 비료는 농작물의 밑거름이 되어 식물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식물이 자라서 꽃이 피면 흙을 북돋워주고 웃거름을 주어 제대로 영근 열매가 자라도록 또 도와준다.
우리네 인생도 밑거름과 웃거름이 제대로 조화를 이룰 때
제대로 된 인생의 열매를 맺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