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나니"
학창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시조로 조선 후기 문신인 남구만이 지었다는 설도 있고 작자 미상이라는 이설(異說)도 있다.
또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했다는 주장과 당파 싸움과 간신배를 비판한 시라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내게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로 와닿는다.
아마도 주말농부로 살아가는 현재의 삶과 닮아서 그런 듯하다.
우수, 경칩이 지나고 농사 철이 다가오면서 초보 농부의 마음이 바빠졌다. 더구나 오랜 겨울 가뭄 끝에 찾아온 봄비는
농사철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라고나 할까.
지난 토요일 오후, 쉬지 않고 내리던 봄비에 이번 주는 파종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햇살이 잠시 비치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작년에 우리 밭을 갈아주신 동네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다.
내일 오후에 밭이 많이 질척 거리지 않으면 트랙터로 로터리 작업을 해주시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일요일 오후 한 시쯤 동네 어르신이 오셔서 밭 상태를 보시더니 트랙터를 치기 시작하셨다
쉬지 않고 한 시간쯤 트랙터를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밭의 흙이 퇴비와 유기질 비료를 머금은 포슬포슬한 기름진 토질로 바뀌었다.
이제 파종을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다.
아내에게 집에 싹 틔워둔 씨감자를 가져오게 하고 안동에서 처남 내외가 수선화, 작약, 상사화 등의 여러 가지 식물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출발한다고 소식을 전해 왔다.
귀한 손님들을 대접할 먹을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협에 들러 미나리와 상추, 마늘을 샀다.
냉동고에서 돼지 목살을 꺼내 해동을 시키고 며칠 전에 구매한 무쇠 불판도 준비했다.
때맞춰 아내가 장인어른을 모시고 도착했고 처남 내외도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고기부터 구웠다.
돼지 목살이 익을 때쯤 미나리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돼지기름에 볶아주면 맛있는 미나리와 돼지 목살의 조합이 완성된다. 고기를 구운 불판에 세 송이버섯과 마늘도 같이 볶아냈다. 갓 지은 하얀 쌀밥과 김치를 곁들여 내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맥주를 조금씩 부어서 파이팅의 건배를 하고 음식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고기가 너무 적었나"하는 생각이 들어 순간 움츠러들었다.
처남과 둘이서 이랑을 돋우고 고랑을 팠다. 그리고 검정 비닐을 씌우고 감자와 완두콩을 심었다.
작년에는 감자를 세 이랑 심어서 여덟 박스를 수확했는 데 올해는 한 이랑만 심었다. 작년에 너무 많은 감자가 처리 곤란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밭에서 일하는 동안 아내와 처남댁은 수선화, 작약 상사화, 달맞이꽃, 황금사철, 단풍나무를 심었고 밭 성토면에 꽃 잔디도 심었다. 가장자리에는 부추와 상추를 심어 건강한 부식재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 주말 농부의 아쉬운 퇴근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모두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서는 밭 언저리에 앙증맞게 고개를 빼꼼히 내민 머위 잎사귀가 너무 사랑스럽다.
작년에는 잡초와 벌레, 그리고 무더위로 힘든 주말 농부였다.
올해는 농막으로 무더위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작년보다는 수월 할 거라 위안을 삼으며 이미 어두워진 도시로 향했다.
농사는 내게 힘들지만 힐링이 되고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