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책에나 나오는 얘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년 봄부터 주말농장용 텃밭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준비 부족으로 많은 시행착오와 헛발질로 만족스러운 수확을 얻지는 못했었다.
와신상담 지난겨울 칼을 갈았다. 대파는 추위에 강하다는 얄팍한 상식을 믿고 3월 말 아직 겨울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밭 구석에 대파 모종을 심었다.
결국 계속된 영하의 날씨에 대파는 모두 냉해를 입어 유명을 달리했다.
대파를 내놓고 팔던 철물점 사장이 미웠다.
왜 뻔히 얼어 죽을 줄 알면서 그 모종을 팔았는지 묻고 싶었다. 올해 농사도 시작부터 헛발질이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4월 초 감자와 완두콩을 심었다.
작년에는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고 손으로 두둑을 만들었는데 올해는 기계로 직접 두둑을 만들었더니 엄청 편하고 효율적이었다. 영농 기계화의 편리함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식재료 감자와 쪄서 하나씩 까먹으면 최상의 영양간식인 완두콩 심기는 해마다 거르지 않는다.
내가 아래쪽 밭에 작물들을 파종하는 동안 아내는 농막 앞에 온갖 꽃들을 심었다. 처남 내외가 매주 새로운 꽃모종을 가져와서 농막 앞 꽃밭 만들기에 도전했다.
수선화, 금낭화, 제라늄, 라일락, 천리향, 작약, 꽃 잔디까지 이름도 기억 못 할 다양한 꽃들을 심었다.
둘째 주에 청도 오일장을 찾았다.
체리, 매실, 대봉감, 산초나무 묘목을 사서 심었다.
지금도 밭에 감나무 여러 그루와 호두나무 두어 그루, 살구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가 있어 가을이 되면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어서 좋다.
셋째 주말에는 엄마가 도움의 손길을 주러 오셨다.
양배추, 브로콜리는 모종을 심었고 땅콩과 공심채를 파종했다. 강낭콩, 결명자, 잎들깨 씨앗도 정성을 다해 뿌렸다.
그리고 지난 주말 다시 엄마를 모시고 막바지 고추심기에 돌입했다, 무려 150주의 고추 모종을 구매했다.
추가로 10주의 청양고추도 심었다.
엄마는 심고 나는 고춧대를 박고 줄도 묶으며 손발이 척척 맞았다.
엄마는 일을 하실 때 가장 행복해하시는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잡념이 사라지고 무아지경에 빠질 때 엄마의 행복은 극대화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산에 힘들게 오르면서 머릿속의 모든 생각을 지워 버리고 텅 빈 상태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아닐까 싶다.
이제 봄 파종은 거의 끝나간다.
이밖에도 참외, 야콘, 작두콩, 곤드레, 노각, 가지, 오이, 토마토 모종까지 심었더니 마치 밭이 모든 작물과 야채의 전시장 같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얼마나 뿌듯한지 이루 말할 수 없다.
5월 말쯤 참깨 파종이 끝나면 거의 마무리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모든 게 일사천리다.
비료주기와 약치기만 제대로 하면 올해 농사는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문득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진실이 떠올랐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인간이 게으르고 간사해서 땅을 기만하고 함부로 대하며 정성으로 지은 먹을거리, 건강한 먹을거리가 아닌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불량 농산물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