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시간

by 석담

코로나 시대는 우리의 많은 것을 빼앗아 버렸다.

즐거운 외출도, 절친과의 만남도, 그리고 자유로운 여행까지 어느 것 하나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를 무시하고 맘대로 행동했다가 감염이라도 될라치면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그런 속박의 시간이 어언 삼 년째 접어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우리가 너무나 자주, 그리고 진리처럼 들어오던 문구다.

코로나를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두 겹, 세 겹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손소독제까지 철저하게 챙겨서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철저히 자기를 숨기는 것이 최선인가?


새해를 맞이 하면서 나의 답은 "NO'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방역법을 위반하고 나의 길을 간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내 성격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소심하고 워낙 준법정신이 철저히 몸에 밴 인간이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보증인도 있다. 내 아내가 바로 그 보증인이다.

나의 철저한 준법정신에 만정이 떨어진 내 아내가 그 보증을 기꺼이 서 주리라 확신한다.


우선 이 글은 내가 최상의 힐링의 순간에 써 가는 글임을 미리 밝혀 둔다. 음주 후 글이라 도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잔의 술이 내게는 더 나은 창작의 윤활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대표적 주당 작가로 외국에는 애드가 앨런 포우, 헤밍웨이, 피츠제럴드가 있었고 국내 작가로는 염상섭과 김동리가 있었다. 그들의 애주와 나의 그것은 많이 다르지 않으리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코로나 시대의 힐링의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내가 추구하는 나에게 최적화된 힐링 방법을 소개해 보려 한다. 내가 행하는 힐링 방법이 최선이 아닐 것임은 물론이고 권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저 나의 코로나 시대의 삶을 보여주고자 함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코로나 시국은 좋아하는 이들과의 가끔 가지는 한잔의 술자리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절약한(?) 일주일치 술값을 아껴 적당히 드라이한 와인을 한 병 샀다.

와인을 마신지는 꽤 되었고 집에 와인 냉장고까지 들여놓은 적이 있었지만 마누라의 눈총과 금전적인 부담으로 되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여전히 와인을 즐기고 있다.


주말에는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마누라한테는 작품 활동이라고 포장해서 이야기한다-으로 집을 떠나 나만의 공간으로 향한다. 청도에 있는 농막(樂滿亭)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오래된 좌탁이 있고 간단하게 술안주를 요리할 수 있는 주방이 있다. 그리고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와인을 한 잔 마시며 노안으로 희미해진 스마트폰 두드리기를 쉬지 않는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린 멀리 보이는 시골 밤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금(?)을 들여 장만한 오디오에서는 내가 직접 고른 7,80년대 팝송과 쎄시봉의 포크송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바깥은 세상과 격리된 깊은 침묵만 쌓여 있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Bee Gees의 Holiday에 취해 베란다 밖으로 나서면 귓가를 스치는 멈추지 않는 바람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그 바람은 이 공간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멈춘 시간이 아님을 느끼게 해 준다. 나의 살아 있음을, 내가 숨 쉬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언제 이렇게 살아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살았던 게 언제였나 싶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좋은 술을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내게 최고의 힐링이자 휴식이다.


직장생활의 고단함도, 가족 부양의 무거운 어깨도 오늘은 다 잊었다. 그저 밤하늘에 무수하게 박힌 별들을 보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쏟아지는 별을 보며 윤동주의 시를 되뇌어 보았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