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세상으로의 탈출을 위해 시동을 걸려고 마음먹었지만 회사 대표님의 호출을 받고 출근하여 점심때가 돼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집에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다시 탈출을 감행했다.
이번 주말에는 아내가 가사에 바빠서 혼자 떠난다.
입이 한 발이나 나와 뾰로통한 아내의 표정을 뒤로하고 나만의 쉼터, 주말농장 낙만정(樂滿亭)으로 향했다.
오늘은 안 쓰는 CCTV를 농막에 설치하기로 한 날이다.
업체에 알아보니 철거비, 설치비 포함해서 40만 원을 달란다.
평소 친분이 있는 전기기술자 이 과장에게 숯불구이 구워 주겠다고 얘기하고 공사를 맡겼다.
바람 부는 영하의 날씨에 CCTV 설치를 오후 늦게 까지 마쳤다.
해거름이 돼서야 미나리 삼겹살과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이 과장의 노고에 보답하고 사례비를 챙겨 드렸다.
어두워진 시골의 밤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낙 만정 명패 소리만 간혹 들린다.
20년 전쯤 첫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제작한 오크 재질의 좌탁에 앉아 디카페인 드립 커피를 내려 마셔 본다.
진한 커피 내음과 더불어 브런치에 올릴 한 꼭지의 글을 기대했지만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 그냥 자고 내일 맑은 정신에 다시 쓰자."
밤새 바람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몇 번이나 잠에서 깨었다.
느지막이 눈을 뜨니 베란다를 비집고 아침 햇살이 찬연히 빛난다.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멸치와 무를 썰어 넣고 맛국물을 끓인다. 양파, 배추, 미나리, 그리고 냉동시킨 청국장 두 덩어리를 준비한다.
문득 마누라가 청국장은 제일 나중에 넣으라고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멸치를 건져내고 배추와 미나리, 양파를 넣고 끓인다. 그리고 김치와 청국장, 간 마늘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 내니 진미다. 웰빙 음식이 따로 없다.
어제 먹다 남은 밥을 전기밥솥에서 푸고 김치까지 곁들였더니 내가 만들었지만 환상적인 맛이다.
오전에 본가에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아침 먹으러 오라신다. 청국장 끓여 먹었다 하니 내심 서운한 눈치다.
오후에 가창에서 하우스를 농막 대용으로 쓰고 있는 철물점 사장 내외가 왔다. 농막 멋지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이다.
농사짓는 이야기, 애들 수능 이야기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남자들이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간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남자들끼리 수다를 너무 떤 것 같아 민망하다.
다시 어둠이 내리고 낙만정은 적막에 쌓였다.
간혹 길고양이들의 구애를 위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되어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를 집필하고 실학을 집대성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나도 세상으로부터 유배된 심정으로 이 낙만정에서
주옥같은 글들을 남길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