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의 사계 1

5도 2촌의 시작

by 석담

공사가 시작된 건 11월 초였다.

연말이라 모든 업체들이 바빠서 농막의 준공은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에야 끝이 났다.

그래도 아직 소소한 뒷정리는 남아 있었지만 농막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모두 설렘이 가득했다.

딸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장식을 달고 사진을 찍고 있다.

금요일 퇴근 후 저녁도 건너 띄고 최소한의 생활 집기들을 바리바리 싸서 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싣고 두 딸과 아내, 그리고 해피를 태우고 농막으로 달렸다. 이미 어둑해진 거리에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40여분을 달려 농막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저녁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내는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였고 나는 그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불멍을 준비했다.


"여보, 여기 전기레인지가 인덕션 용이라 일반 냄비가 안되네"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해결책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서둘러 오느라 인덕션용 용기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불멍을 하려고 토치로 숯에 불을 붙이려다 휴대용 가스를 준비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1킬로 미터 거리의 마트로 차를 몰고 나갔다.


아뿔싸!

하늘은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시샘이라도 하는 것일까?

마트는 이미 문을 닫았고 거대한 셔터가 가게 앞을 가리고 있었다. 마트 내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듯 해 가게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으나 응답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에서 소년이 아라비아 야시장의 불 꺼진 가게 앞에서 느꼈을 절망감이 이런 것이 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허기진 아내와 딸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다시 차를 몰고 읍내로 향했다.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는 사람의 자취는 물론이고 문을 열어 놓은 가게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계속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고 내 머릿속에는 구세주 같은 누군가가 떠올랐다.


마트 주인의 전화였다. 사정을 얘기하니 감사하게도 빨리 오라고 했다. 마트에서 휴대용 가스와 생수, 그리고 애들이 먹을 과자를 사서 농막 근처의 이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모님은 우리 밭 바로 옆에서 전원주택을 지어서 살고 계신 동네 아주머니로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어서 이모님으로 부르고 있는데 누님으로 바꿔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이모님이 오늘 인덕션용 그릇을 빌려 주셨으니 우리 가족에겐 일용할 양식을 주신 구세주인 셈이다.

화롯대에 돼지고기 목살과 삼겹살, 그리고 쫀디기를 구웠다

다행스럽게 나의 임기응변으로 우리 가족의 먹을거리 문제는 해결되었다.

나는 화로대를 준비해 숯에 불을 붙이고 석쇠를 얹어 목살을 굽고 애들을 위해 쫀득이를, 마지막으로 남은 숯에는 고구마까지 구워서 후식으로 먹었다.

거기다 와인까지 한잔 걸치니 금상첨화였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내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저녁을 먹고 불멍을 하기 위해 마당에 있는 화로대에 참나무 장작을 넣어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멍 때리는 즐거움을 누릴 때까지는 좋았다.

마누라는 화로대를 데크 위에 올려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나를 닦달했다. 나는 위험하다며 한사코 반대했지만 아내의 강압에 못 이겨 결국 데크에 합판 한 장 깔고 그 위에 화로대를 얹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활활 타오르던 장작이 거의 다 타서 숯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아내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엄마야, 데크에 불붙었다"


나는 깜짝 놀라 화로대를 마당에 내리고 물을 부은 후 데크를 살펴보니 내 주먹이 들어가고도 남을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마치 내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박싱 아웃한 지 하루도 안된 신상을 태워 먹은 듯한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 화를 내면 부부싸움으로 비화할 걸 알기에 그냥 괜찮다며 아내를 위로해 주었다.

공사업자에게 연락하니 흔쾌히 수선을 해주겠단다.

저녁식사와 불멍도 끝나고 가족들은 각자의 소일거리에 집중했다. 나는 브런치에 한 꼭지의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마누라는 농막 광내는 작업에, 딸애들은 음악 듣기에 여념이 없었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작은 딸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새벽 별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북두칠성을 뚜렷하게 보았다고 했다.

집에서는 늦잠 자는 작은 딸이 새벽 별을 봤다니 대견하기도 했다.


이튿날 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 부부만 농막을 지키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부모님과 남동생 부부가 다녀갔다.

우리 부부는 월요일 농막에서 바로 출근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일요일 저녁 무렵 옆집 이모님이 화장지를 들고 집들이를 오셨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할 수 없어 또 숯불구이를 했다. 막걸리와 삼겹살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모님은 데크의 불에 탄 구멍을 보시더니,

"새 집에 불까지 났으니 부자 되겠네" 하시며 웃으셨다.

우리 부부도 마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