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도 2촌이 4도 3촌이 되다

낙만정의 사계 2

by 석담

청도 낙 만정(樂滿亭; 농막)이 문을 연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매주 거르는 법 없이 꼬박꼬박 이용일을 채우는 걸로 보아 가성비는 갑인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부족해 덤으로 일요일 하루를 더 유(留)하는 여유까지 부리는 우리 부부는 진정 자유인이 아닐까 변명해본다.


크리스마스 전날은 두 딸들까지 완전체의 우리 가족이 낙만정에서 이브를 보냈다. 두 딸들은 농막 외벽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셀카도 찍고 다락방에서 창밖으로 밤 풍경을 보기도 하며 신기해했다. 둘째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북두칠성을 보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날 점심을 먹고 나자 두 딸들은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한 번도 낙만정을 찾지 않았다.

딸들을 위해 정성 들여 준비한 쫀디기 구이와 숯불에 구운 군 고구마의 달콤함도 그녀들의 흥미를 잡아 두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크리스마스날 저녁에 부모님과 남동생 부부가 왔다.

농막도 생긴 게 집인지라 부모님은 화장지를 사서 오셨다.

우리 농막에서 손님을 맞는 최고의 접대는 숯불 목살구이이다.

불 맛이 잔뜩 베인 돼지 목살구이에 누구나 '고기가 정말 맛있다'는 찬사를 토해낸다. 나는 속으로 '숯불구이니 어찌 맛이 없겠는가'라고 화답하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아내와 나는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동녘에서 떠오르는 새해의 첫 해를 보며 우리 부부는 우리와 자식들의 재수를 빌었다. 그리고 올해는 마누라하고 좀 덜 싸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그 마지막 바람은 들어주시지 않았다.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쯤 지난 이 시점에 우리 부부는 얼마나 죽일 듯이 많이 싸웠던가? 다음 브런치에는 부부싸움에 대한 연작 에세이라도 쓸 태세다.

낙만정의 두 번째 손님은 장인어른과 처형 부부였다.

작년에 장모님을 떠나보내신 장인어른의 무덤덤한 표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의 진한 슬픔을 보았다. 당신에게는 그 어떤 호사도, 즐거움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오직 흐르는 시간만이 그 슬픔의 깊이를 희석할 따름이다.

손위 동서는 지난해 말에 정년퇴직을 했다. 퇴직 후의 삶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아 보였다. 남일 같지가 않았다.


그 다음날 오후에는 동네 이장님과 내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옆집 이모님이 오셨다. 그분들도 하나같이 화장지를 들고 오셨다. 벌써 모인 화장지만 해도 농막이 비좁을 지경이다. 이장님이나 이모님 모두 칠십 대이니 할머니라는 호칭이 적확한 표현이지만 할머니라 부르면 기분이 상하실까 봐 이모님이라 부르고 있다.

사실 나랑 열댓 살 정도밖에 나이 터울이 없으니 누님이라고 부를까 생각 중이다.


일요일 저녁 10시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다섯 시쯤 일어나야 한다. 아내를 집에 내려 주고 회사로 출근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쌓인 새벽 다섯 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차유리에 맺힌 성에를 녹이기 위해 예열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군고구마를 까서 한 입 베어 물자 입안에 단맛이 퍼졌다. 순간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을 떠올랐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안개가 옅게 깔린 적막한 도로를 달려 세속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