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불금이 있다.
남들이 말하는 불타는 금요일은 아니지만 2박 3일 동안 농부로 살아가기 위해 출발하는 금요일 저녁이 곧 불금이다.
집으로 퇴근해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들과 먹을거리를 챙겨 낙만정(樂滿亭)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8시가 훌쩍 넘었다.
서둘러 밥을 안치고 간단하게 반찬을 준비해서 막걸리 한잔을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는다.
막걸리가 한 병쯤 비워질 무렵 내 눈은 냉장고 속을 헤매고 있었다. 소주 한 병과 맥주 캔 하나를 끄집어낸다.
이제 소맥으로 술상을 이어간다.
코로나로 시작한 혼술이 이제 그 이력이 붙었다.
요즘은 농사짓기가 참 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농사에 대한 궁금증은 인터넷 동영상을 검색해 해결하면 되고 농사 물품은 인터넷 사이트로 주문하면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도착하니 이 얼마나 빠르고 편한 세상인가?
디카페인 커피를 내려 얼음을 넣어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마당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았다.
시원한 밤바람이 취기 오른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하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별이다.
벌써 몇 달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서 농사철에 농민들의 고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의 고민도 더불어 깊어지는 걸 보니 나도 거진 반농부는 된 듯하다.
바빠질 내일을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다섯 시 반쯤 되었을까? 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반강제적으로 기상했다.
밭 중심에 설치한 두 개의 스프링 클러를 틀어 밤새 목말라 있을 작물들에 단비 같은 물 주기를 시작했다.
문득 건너편 가장자리 감나무 옆에서 낯선 생물체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있나?
세 마리의 고양이 새끼가 우리 터에 보금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급하게 동네 가게에서 사료를 사다 주니 오손도손 다정하게 맛있게 먹는다.
주말농부로 살기 전에는 매주 주말이면 동네 산으로 등산을 가곤 했는데 농번기로 접어들면서 등산하고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오늘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어제 오는 길에 등산화와 등산 스틱까지 챙겨 왔다. 농부도 운동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
지치지 않는 농사를 위해 튼튼한 체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청도 남산이다.
남산은 원래 경주와 서울같이 왕이 살던 곳에 있는 산을 특별히 지칭하던 이름인데 청도에 무슨 남산이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 안다. 예전에 이서국이라는 부족 국가가 청도지역에 있었단다. 그래서 청도도 남산이라는 지명을 쓰게 되었다는...
남산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조계종 사찰인 신둔사가 나왔다. 차를 주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에 오른다.
숨은 가빠오고 간만의 산행이라 다리도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정상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가볍게 인증사진 한 장 남기고 하산했다.
본가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농사를 해볼까 마음먹으니 아뿔싸 너무 덥다.
잘못하면 일사병 걸릴 지경이다.
의자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 얼음물 마시며 낮시간을 다 보냈다.
오후 4시가 넘어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한다.
옥수수 한고랑 새로 파종하고 강낭콩도 한고랑 추가로 심었다. 옥수수는 따자마자 삶아 먹어야 제일 맛있고 시간차를 두고 파종하면 두고두고 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고 너 투브가 알려주었다.
강낭콩은 지난번에 심은 것들이 발아가 시원치 않아 부득이 새로 심었다.
오이, 노각, 참외의 지줏대를 처음으로 만들어 보았다.
이것도 온전히 너 투브의 도움이다.
만들어 놓고 보니 그럭저럭 쓸만해 보인다.
토마토 가지를 묶어 주고 곁가지 쳐주고 감자를 북돋워 주고, 참깨 속아주고, 고추 곁가지 자르고, 땅콩밭에 잡초 제거하고...
정말 농부의 하루는 끝이 없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걸리고 오늘도 고단한 초보 농부의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