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게으를 틈이 없다

by 석담

주말 농장의 아침은 일찍 찾아온다.

평소에는 여섯 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준비하지만 농막에서는 다섯 시 반이면 동쪽에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늦잠을 허락하지 않는다.

'제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느냐'는 시조의 다그침은 교과서의 이야기일 뿐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부모님 댁에 있는 유실수 방제를 위해 준비를 했다.

본가에는 여남은 그루의 감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있고 우리 밭에도 예닐곱 그루의 감나무와 호두나무, 대추나무가 있다.

보통 감나무는 수확 때까지 일곱 번 정도 약을 쳐야 하는 데 작년에는 초보 농부의 무지함으로 한 번만 방제하는 바람에

감 수확이 거의 없었다.

지난주부터 어머니의 약 좀 치라시는 압력을 받아 온터라 오늘은 기어이 약통을 매고 나섰다.


5월에는 총체벌레, 6월에는 깍지벌레, 거기에다 탄저병 약까지 세 가지 약제를 섞어서 약을 쳤다.

무슨 벌레의 종류가 그리 많은지 벌레 이름 외우기에도 벅차다.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중국산 엔진 분무기의 소음이 더 이상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중국산이라고 에둘러 지칭한 것은 인터넷으로 구매하여 두 번이나 애프터서비스를 받고 결국에는 새 걸로 교환받는 사태까지 이르렀음에다.

본가의 약치기가 끝나고 우리 밭으로 장소를 옮겼다.

약 치기 전에 따야 한다며 어머니는 오디를 한 소쿠리나 따 주셨다.

돈 주고는 잘 사 먹지 않던 오디이지만 내 밭에서 자란 청정한 과실이라 생각하는 절로 손이 간다.

금세 손가락에 오디 물이 배었다. 가물어서 인지 엄청 달다.

봄 가뭄에 애타던 농심을 나도 올해 봄에 뼈저리게 느껴 보았다.


오이줄기에는 벌써 탐스런 오이가 두 개나 열렸다.

약 치기 전에 맛볼 요량으로 서둘러 땄다.

가뭄 탓에 감자가 많이 말라죽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나름 공들인 감자 농사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낳지 못했다.

감자는 봄에 씨감자를 파종하는데 씨감자를 심기 전에 한 달 정도 공을 들여 싹을 내야 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줘가며 애지중지 싹을 틔워 고이 심었는데 수확하기도 전에 말라죽은 감자에게 미안하다.

지난봄에 2주 동안 우리 밭 언저리에서 살던 새끼 고양이는 떠나고 어미로 보이는 길고양이 한 마리만 정착했다.

주말마다 들러서 사료를 챙겨 줬더니 이제는 적대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 밥때만 되면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밥 달라고 시위를 한다.


올해 처음으로 브로콜리와 양배추 모종을 사서 몇 포기 심었는데 너무 튼실하게 잘 자라주니 고맙다.

브로콜리 잎 속에 시장에 파는 브로콜리가 달리는 걸 보고 너무 신기했다.

양배추도 처음에는 내가 알던 양배추랑 모양이 너무 달라서 양배추가 맞나 하고 의구심을 가졌는데 얼마 전부터 속이 동그랗게 말리면서 전형적인 양배추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걸 보고 '아하'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탐스런 고추와 앙증맞은 토마토까지 계절과 비와 햇살이 만들어가는 자연의 산물은 인간의 삶만큼이나 신비롭다.

이제 '내 돈 내산'이 아닌 '내 밭 내산'을 이루어 가는 우리 밭이 대견하고 소중하게 와닿는다.

귓가를 어루만지는 시원한 한줄기 바람도 고마운 하루가 또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