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짙은 복숭아밭 너머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스르르 눈꺼풀이 감긴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 농막(낙만정)의 풍경이다.
"Mamaa, Just killed a man..."
오디오에서 귀에 익은 팝송이 흘러나와서 절로 눈이 떠졌다.
퀸의 이 노래가 군사 정권하에서는 한때 금지곡이 되었는데 가사 때문이 아니고 보헤미아가 헝가리와 체코지역의 공산권이라 금지했다니 아이러니하다.
학창 시절 하숙방에서 통기타 치며 부르던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타는 목마름으로', '광야에서'가 떠오른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창문 너머 세상을 바라보았다.
계절의 전령사 고추잠자리가 온 밭을 날아다닌다. 순간 "아니, 벌써 가을이 왔나?"하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뻔했다. 정확하게는 입추가 지난 시점부터 날아다닌 듯하다. 잠자리에게는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특수장치라도 달린 듯 계절의 변화에 때맞춰 나타난다.
매미도 이에 질세라 떠나는 여름이 아쉬운 듯 쉴 새 없이 울어 댄다. 언젠가 매미의 귀가 난청이라 자기가 우는 소리는 거의 듣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지 않으면 매미는 자기 울음소리에 귀청이 터지고 말 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곁들인 곤충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을 반납한 주말 농장 2년 차의 올해 농사 성적은 썩 나쁘지는 않다. 부지런히 물 주고 때 맞춰 약치고 시간 날 때마다 애정 어린 눈길로 돌봐준 보답인지 올해는 많은 먹을거리를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 주었다.
상추, 깻잎, 궁채 등 쌈채소는 물론이고 오이, 가지, 노각, 참외, 수박 등의 야채 과일까지 우리 식단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영글어 가는 단호박, 호박, 미니사과, 호두, 감, 대추는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작년에 탄저병으로 빈 작을 면치 못했던 고추 농사가 올해는 그런대로 수확이 있을 듯하다.
밭에서 갓 딴 옥수수는 감미료 없이 삶아도 맛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밭에서 얼마나 많은 여러 가지 새들을 만났던가?
어느 한 종의 새 이름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각각의 아름다운 깃털과 채색을 가진 새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밭을 찾아 아름다운 음률을 대가 없이 들려주었다.
우리 밭에는 길고양이 가족이 동거하고 있다.
길고양이 부부와 그 새끼들이다. 우리 농막 밑에 자리 잡고 살고 있어서 우리 부부가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좀 친해졌는지 1미터 정도 거리에 있어도 개의치 않고 신경 쓰지 않고 밥을 먹는다. 애들은 엄마 고양이를 레오, 아내는 아빠 고양이를 낭만고양이로 이름 지어 주었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 친구들도 있다.
땅 밑에 있는 두더지는 가끔씩 마당의 흙을 밀어 올려 나를 성가시게 한다.
참깨밭에 자주 찾아오는 비둘기 부부는 참깨를 유달리 애정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준다.
이 밭에서 자라는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잎새 하나 그 어느 것도 자연의 은혜를 입지 않은 것이 없다.
한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 장마철의 장대비, 시시때때로 부는 시원한 바람까지도 모두 다 우리 밭을 풍요롭게 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또한 내가 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듣고, 보고, 먹고 하는 행위 또한 자연에서 받은 것이라고 나는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