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장인어른의 여든한 번째 생신이다.
해마다 장인어른의 생신 때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장인어른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어 있었다.
장인어른의 생신이 다가오면 아내와 처형은 형제자매들의 모임에서 매달 갹출해서 적립해 둔 돈에서 일정금액을 인출해서 미리 생일 선물로 드리고 온 가족이 모여 같이 식사를 했다.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소를 섭외하는 일은 항상 나의 몫이었다. 모두들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내가 식당 예약을 도맡아서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서울에 사는 처형 내외와 세종시에 사는 막내 처남, 그리고 업무로 바쁜 큰처남 대신에 내가 제일 느슨한 탓이 아니었나 싶다.
올해도 장인어른 생신이 임박한 주말 점심시간에 예약을 하려고 나를 이름 있는 식당에 서둘러 인터넷으로 접속해 보았더니 모두 만석이다.
급기야 식당에 직접 전화를 했다.
이름난 한우 집이었는데 마침 자리가 났다.
서둘러 12명분의 예약을 하고 가족 단체 대화방에 예약 사실을 통보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원래는 회사가 쉬는 날이다.
그런데 추석 대목이라 주문이 밀려 내일도 전 부서가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장실에 들러 장인어른 생신이라 내일 하루 쉬어야겠다고 말하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 사장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분명 사장님은 전 직원이 일하는 데 혼자만 쉰다고 잔소리하면서 마지못해 보내줄 것이다.
이 회사에 20년이나 근무했지만 이럴 때면 나는 항상 회사가 낯설다. 이 정도의 융통성도 없는 회사에서 나는 20년을 다녔다.
그리고 나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 회사를 다니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회사는 내게 무엇이고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결정은 빨랐다.
내일도 여느 때처럼 출근할 것이다. 그리고 11시쯤 사정을 이야기하고 장인어른의 생신에 갈 것이다.
누군가는 이야기할 것이다.
회사가 바쁜 데 개인의 사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또 누군가는 이야기할는지 모른다.
그런 회사를 왜 다니느냐고.
나는 어떤 게 옳은 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묻고 싶다.
나를 위해 회사가 존재하는 것인지
회사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그런 회사가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 배경사진 : PIXABAY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