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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6화
열등(劣等)의 시대(時代)
by
석담
Sep 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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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한 인간으로 낮추어 평가하는 감정"
표준국어대사전은 열등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아마도 이 지긋지긋한 열등감이 처음 시작된 것은 국민학교 입학하면서였다.
자아(自我)라는 것이 생기면서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습관이
생기면 서였지
않나 싶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를 괴롭힌 쓸데없는 열등감이었다. 그것은 루저 의식이나 좌절감과는 다르게 일상에서 감정의 기복이나 표출이 잘 드러나지 않는 감정이다.
저학년 때는 가난했던 집이 열등감의 원인이었다.
단칸방 월세살이 시절에는 자가주택에 사는 애들이 부러웠고 "노가다"* 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부잣집의 양복 입고 출근하는 친구 아버지가 부러웠고 직장 다니는 엄마 대신에 방과 후 집에서 간식 챙겨주는 친구 어머니가 부러웠다.
미국 드라마 뿌리(Roots) 포스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생겼다.
"나는 왜 이렇게 못 생기게 태어났나?"
나의 못생김은 모두 부모님 탓인 듯 부모님을 원망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사로 잡혔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내 별명이 '쿤타 킨테'였으니 그 못생김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쿤타 킨테**도 흑인 입장에서 보면 엄청 잘 생긴 얼굴인데 그 당시에는 그 별명이 왜 그리 듣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이성에 눈을 뜬 시기였으니 외모에 대해 엄청 신경을 쓰며 살았다.
의외로 공부에 대한 열등감은 덜했다.
공부를 그렇게 못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열등감이 라기보다는 경쟁심이나 시기심이 맞을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공부에 대한 열등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수학과 물리 등의 이과 과목의 열세가 완연했다. 도무지 이해도 되지 않았고 집중도 할 수 없었다. 수학과 물리에 대한 열등감은 공포심으로 변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 마침내 대참사가 일어났다.
매번 월례 고사 시험에서 수학 과목이 10점, 20점을 기웃거리더니 마침내 빵점(0점)을 맞고야 말았다.
그 충격은 엄청났다. 나는 대학진학도 수학, 과학 과목이 없는 과로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 뜻은 이뤘지만 여전히 나는 수학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학창 시절 줄 곧 느껴왔던 열등감은 싸움에 대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한 번도 싸워서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었다. 국민학교 때 한 번은 비등하게 싸운 적이 있었고
중학교 때는 작은 체구의 권투를 배우는 친구에게 정신없이 처맞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일부러 운동부 출신의 불량 서클 친구와 친하게 지낸 적도 있었다.
그것은 내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한, 강한 자 옆에 빌붙어서
나약한 나를 숨기기 위한 계략이었다.
대학 시절은 열등감의 버라이어티가 아닐까 싶다.
운동이면 운동(여기서 말하는 운동은 민주화 운동을 말함),
공부면 공부, 연애면 연애 제대로 해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술과 담배에 절어 막걸리 마시며 "그날이 오면"을 불러 댔다. 어느새 그날이 왔다.
4년을 허송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이 되어 버렸다.
사회에 나오니 열등감이 최고조로 밀려왔다.
백수의 열등감을 당할 만한 것이 있을까?
부모님의 눈칫밥을 먹으며 몇 년을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졸업하고 아직 제대로 취업을 못 한 딸아이를 보아도
뭐라고 하기보다는 응원하는 마음이 앞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중소기업의 직장생활은 내 삶의 족쇄가 되고 말았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사업하는 친구들이 나오는 대학동창모임에는 나가지 않는다. 경조사 때 부조나 하는 정도이다.
거리가 멀어서라고 핑계 대지만 사실 열등감 때문이다.
내 나이 정도면 대기업 임원급인데 나는 아직 중소기업 부장이라는 루저 의식이 그 시작일 것이다.
결혼하고 나니 또 열등감이 밀려왔다.
우리 집 처가 가계도를 잠깐 살펴보면 퇴직 교육공무원이신 장인어른, 용산 행정관인 막내 처남, 소방 공무원 큰 처남,
서울시 퇴직 공무원 손윗 동서, 우정사업본부 아내까지 모두 공무원 가족이다.
나 빼고 다 공무원이다. ㅠㅠ
오늘도 프사에 올라온 친구의 근황을 상상하며 나는 슬며시 열등의식에 사로 잡힌다. 이 끝나지 않는 열등감은 눈을 감아야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 사회 어디에도 내가 우등한 곳은 없다.
그렇지만 지금껏 나를 지탱해 온 그 열등감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날은 꼭 올 거라 믿는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으로 우뚝 서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견뎌보자.
하늘에 계신 장모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은 높은 곳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노가다 : 막일
**쿤타 킨테 : 미국 작가 Alex Haley의 소설 뿌리(Roots)를 원작으로 한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 흑인 소년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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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감정
공감에세이
Brunch Book
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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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가족 같은 회사요? 그냥 웃지요.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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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의 향기를 찾아 산에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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