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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8화
회사에서 졸지에 방화범이 될 뻔한 사연
by
석담
Sep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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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연일 건조 주의보가 계속되었고 여기저기에서 화재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우리 회사도 혹시라도 있을 화재에 대비해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설 대목으로 작업이 밀려 토요일에도 전 직원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촌누나 딸 결혼식이 있어서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예식장을 잠시 다녀왔다.
예식장에 들렀다 돌아오니 공장이 어수선했다.
마당에는 폐 보루*가 널브러져 있었고 소화기 분말이 묻어 있는 게 보였다.
그걸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측이 어려웠다.
예사로 생각하고 넘겼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사무실의 영업 부장이 퇴근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다.
"보루에 불이 붙어서 소화기로 껐는데 혹시 연기가 나지 않는지 한번 확인하고 가세요."
나는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문단속을 하면서 동판창고 옆의 폐기물 보관소에 있는 쓰레기 자루에서 혹시나 연기가 나는지 살폈다. 나는 한참 동안 쓰레기 더미를 살피다 아무 이상징후가 없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떠나온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회사 옆의 건물을 임대해서 가공소를 하는 박사장의 전화였다.
"김 부장, 공장에 불이 나서 난리 났어. 소방서에는 내가 연락했어"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휴대전화로 CCTV를 열어 보니 창고 옆에는 불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연기가 자욱했다.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신호도 무시하고 급하게 회사 입구에 도착하니 골목에 연기가 자욱해서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소방차가 벌써 도착해서 진입하고 있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차를 골목 입구 남의 집 주차장에 대고 회사 반대편 언덕길을 걸어서 회사로 들어갔다.
옷에는 온통 도깨비 풀이 사정없이 붙어서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소방관들은 침착하게 장비를 챙겨서 불을 끄기 시작했다.
목조로 된 창고 지붕은 내려앉아 하늘이 보이고 불은 한참만에 동판 창고를 다 태우고 나서야 꺼졌다.
그러는 사이 회사 간부급 직원들과 사장님 상무가 회사로 돌아왔다. 그들은 급하게 사무실로 올라가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재의 원인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작업장에서 펴 보루에서 시작된 자그마한 불을 끄고 그 보루를 다시 쓰레기 자루에 담아 두는 바람에 불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소방서에서 조사 나온 소방관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벙어리가 되었다.
소방관들은 CCTV 영상을 복사해 가고도 그 사실을 밝혀 내지 못했다.
화재 진압이 끝난 그날 나는 회사 식당에서 직원 한 명과 웅크리고 잤다. 혹시라도 모를 잔불의 재발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춥고 힘든 밤이었다.
며칠 후 나는 경찰서 형사과에 출두했다.
공장에 마지막까지 남아 화재 시작 장소에 있었다는 게 근거였다.
늙수그레한 사람 좋게 생긴 형사과장은 걱정할 것 없다며
나를 안심시키고 조서를 작성했다.
나는 사실대로 그날의 나의 행적과 동선에 대해서 세세하게 답했다.
그것으로 화재사건은 끝이 난 것이라고 믿었다.
한 달쯤 지나서 퇴근해서 집에 오니 마누라가 사색이 되어 나를 채근했다. 당신이 불을 낸 게 맞냐고 추궁했다.
그녀는 경찰서 형사과에서 등기가 왔다며 보라고 했다.
그곳에는 내가 화재 용의자로 적혀 있었고 수사결과는 무혐의 처리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화재 용의자가 되었고 방화범으로 전락할 뻔했다.
*보루 : 공장에서 작업시 쓰는 기름 등을 닦는 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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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회사
경찰서
Brunch Book
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6
열등(劣等)의 시대(時代)
07
불편한 회사
08
회사에서 졸지에 방화범이 될 뻔한 사연
09
직장 갑질이 뭔가요?
10
선물과 뇌물의 경계
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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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의 향기를 찾아 산에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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