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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Jul 21. 2024

가을을 기다리며

이제 거의 장마가 끝났는지 다음 주에는 비예보가 없다. 비 온 후의 청명함과 파란 하늘은 힐링의 의미를 새삼 들먹이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가볍게 부는 시원한 바람은 덤으로 따라왔다.

쉴 새 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소음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아름다운 자연에 깔린 배경음악처럼 느껴진다.


길어진 장마 탓에 주말농장에서 손을 놓고 있었더니 잡초가 어느새 무릎높이까지 자랐다.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예초기를 들고 나섰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풀 중에서


예초기 날에 쓰러지는 풀을 보면서 문득 대학시절 접했던 김수영 시인의 시 풀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쓰러지는 잡초를 보고 오래전 대학시절 읽은 시를 떠올린 것이니 시에 대한 모독은 아닐 거다.


한바탕 제초 작업을 하고 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샤워를 하고 드립커피에 얼음을 넣어 그늘아래  앉았다.

한동안 게으름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편씩 따박따박 글을 올리는 작가님들을 보면 경이로울 따름이다.

나도 초기에는 부지런히 글을 올리곤 했는데 열정이 식었는지 글감이 소진 됐는지 이제는 쓰고 싶을 때만 쓴다.


글은 쓰지 못했지만 책은 열심히 보고 있다.

삼국지와 초한지는 오래전에 독파했고 지금은 수호지를 다섯 권째 읽고 있다.

한 달 전에 저렴한 이북리더기를 하나 장만했는데 종이 책을 읽을 때보다 독서 속도가 일취월장이다.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어려운데 다섯 권이나 읽었으니 말이다.

수호지를 읽고 나면 열국지 13권에 도전할 생각이다.

아직 가을이 오지도 않았는데 독서에 열을 올리는 걸 보니 내게는 성큼 가을이 온 듯하다.


이직을 시도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호기롭게 떠벌렸는데 인생  2막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나이는 취업에 여전히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 그 끈을 놓지 않고 여전히 시도 중이다.


아내는 이번 휴일에도 문경의 대야산으로 산행을 떠났다. 산에 진심인 아내는 매주 백두대간을 등산하기 위해 떠난다. 나는 주말 농장에서 여가를 보내고 아내는 산행을 떠나는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따로 놀기의 진수이다.

그래서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는 부부를 보면 한편 부럽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이 싫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취미가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밭에는 먹음직스러운 온갖 과일들이 다가올 가을의 풍성한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는 내게도 내 삶의 한 획을 긋는 소중한 결실이 꿈같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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