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넘으신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요리는 라면 끓이기나 밥하기 정도이다.
팔순을 앞둔 장인어른은 거기에 한 가지 더해서 얼마 전부터 김치찌개에 도전을 하셨다.
두 분 다 평생을 그렇게 남이 해주는 밥만 드셨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이기는 하지만 식욕은 인간이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수단이기도 하다.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의 문제 이전에
그 먹을 것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의 문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노릇이다.
나도 남이 해주는 밥을 얻어먹기만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라면 끓이기 정도였다.
대학 들어가서 하숙을 자취로 옮겨 가면서 요리를 반강제로 해야만 했다.
먼저 만만한 돼지볶음에 도전했다.
프라이팬에 삼겹살이랑 고추장, 설탕을 대충 넣고 볶았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그때는 항상 배가 고픈 시절이었으니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치랑 고기를 조합하여 돼지 김치볶음도 해 먹었다.
아침은 거의 건너 띄었고 점심은 식당에서 해결했으며 저녁은 음주와 함께 했으니 요리는 한 달에 기껏 서너 번이 다였다. 어쩌다 집에서 해 먹을라치면 라면 끓여 밥 말아먹는 걸로 충분했다.
결혼 후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니 모든 걸 똑같이 반씩 나눠서 분담해야 했다. 어쩌다 마누라가 늦는 날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식사를 직접 해 먹어야 했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그래도 라면만 먹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었다. 더 나아가 국도 끓이고 국수까지 섭렵하니 이제 그 경지가 가히 요리의 길로 접어들고야 말았다.
아내도 요리를 못하지는 않지만 내가 만든 요리가 인기가 더 좋다.
내가 하는 요리에는 '맛'이라는 조미료가 추가되는 것도 아닌데 아내와 두 딸은 아빠가 해 주는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특히 좋아라 한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진 건 아닐까?
소고깃국, 된장국, 근대국, 미역국, 배춧국, 콩나물 국, 김칫국, 그리고 갱시기까지 인터넷 레시피 보고 처음 만들어 보고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국 종류는 다양하다.
유채 무침, 동초 무침, 미나리 무침, 봄동 무침 등 다양한 제철 채소를 활용한 나물 무침도 내 전문 분야다.
아버지나 장인어른께 지금부터 요리를 가르쳐 드리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요리를 스스로 해 보는 건 노후를 위한 현명한 행동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요리를 맛있다고 칭찬해 주고 맛있게 먹어주는 아내와 딸들이 있어서 요리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