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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을 뿌렸으면 회수하는 것도 능력이다.

조용필 - 단발머리 (1980)

by 좋은음악수집가

나는 서른이 넘어서 '1위'라는 것을 해봤다. 그간 3위 내에 입상한 것들을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그나마 순위가 높았던 건 탁구로 경산시에서 날아다닐 때도 나의 모교에서 제일 높은 기록은 2위, 경상북도 도민체전 최고 성적도 2위였다. 그나마 기타를 치면서 음악을 하겠답시고 까불고 다녔을 대학생 때, 그때는 모 단체에서 주관한 자작곡 경연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예체능 계열에서 뭔가 나만에 역사를 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고 아주 잘한 행위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더 어린 시절로 가볼까? 난 어린 시절 운동회를 참 좋아했다. 지금처럼 좋아하는 운동을 해서? 천만에! 운동회 날에는 많이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 덕에 나는 달리기 1등은 꿈도 못 꿨다. 늘 느린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1위는 뭐.. 어찌 되었든 간에 33살까지는 없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 우리 반이 1등 한 건 크게 의미는 없으니까 신경 쓰지도 않겠다.


그렇다면 공부는? 당연히! 그런 당연한 것은 사실 언급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유치원에서 내가 1등을 한 기억이 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 비공식이겠지만 내가 말썽은 1위였다. 걸핏하면 떼쓰고 뭔가를 던지고 누군가를 때린 건 확실하게 기억이 나니까... 하나 더 붙이자면 엄마의 속 썩이기 1등으로 치자.


그런 내가 '1위를 하는 순간이 과연 언제나 올까?'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굳이 1등을 바라고 살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1등을 하려고 발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어휴 등신.'이라며 욕한 적은 없다. 사실 나 자신이 1등에 목메는 성격이 아예 아닌 것처럼 나는 남하고 경쟁하는 것 자체가 정말 싫었다.




2024년 아주 더웠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니 왜 노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왜요??"

"아니~ 젊은 사람들 중에 노래 좀 하는 사람이 없어 요새는!"

"저 노래할 줄 알아요~"


그때 나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질지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부대에 배수로를 크게 파주시기 위해 굴삭기를 몰고 들어와서 손수 작업해 주신 마을 이장님과의 짧은 대화는 내가 <동송읍민의 날> 노래자랑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장님께서 '마을 축제'라고 하길래 그냥 동네 어르신들 옹기종기 모여서 노래 한곡만 하고 내려가면 되는 간단명료한 작은 축제로 생각한 나는 축제당일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생각보다 많이 모인 인파는 오히려 더욱 긴장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는 준비한 곡을 부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곡은 조용필의 <단발머리>. 무대에서 샤우팅을 할만한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대중적인 곡이 좋다는 이장님의 말씀을 받들어 최대한 담백한 곡으로 준비했다. 14팀 중 나는 10번째, 그냥 하던 대로만 하면 될 것이라 믿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1등을 했다!


사실 무대에서 노래를 잘했건 못했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랬다. 엄청난 무대를 선보인 후 자신이 무대에서의 모습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뻥쟁이, 나는 글을 쓰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무대에 내려가서 많은 사람들과 악수하고 그저 뒤집어 놓았다고나 할까? 물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일이다. 관객도 나도 서로 초면인데 그냥 즐기는 축제 그 자체였으니까.


시상식에 오를 때 혼자서 생각했다. '이 정도면 인기상은 진짜 문제없음!' 호응은 내가 대단했으니까. 근데 인기상은 여중생 듀엣이 가져가고 3위, 2위도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다. 설마 1위를 내가 하겠나 싶었는데 내가 덜컥 되는 순간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1위를 하던 순간이었다.

잘 놀았다의 표본!

상품을 받고 일주일을 싱글벙글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현 아내)와 동송 LG베스트샵에서 무엇을 살지 행복한 고민을 했던 날도 생생하고 신혼집으로 광파오븐(상품)을 들고 들어온 날도 정말 뿌듯했다. 다른 물건들은 몰라도 내가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1위로 받은 상품은 지금도 내 기분을 설레게 만든다. 물론 지금은 아내가 제일 많이 사용한다는 것!



조용필의 공식 1집은 1980년 지구레코드를 통해 나왔다.

1980년에 나온 음반의 1번 트랙, 80년대의 사운드가 맞나 싶은 뿅~뿅~뿅~ 거리는 신비한 소리는 그 당시에 듣던 사람들에겐 얼마나 신기했을까?


게다가 베이스의 꽃, 슬랩 주법이 생소하던 시절이었고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1기의 베이시스트 김택환의 연주력은 지금 다시 들어도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조용필의 별명 '가왕'도 대단하지만 가왕의 음악을 연주하는 위대한 탄생도 보통의 인물들은 아닌 셈이다.


조용필 30주년 기념음반에 수록된 <단발머리>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긴 역사만큼 멤버교체도 많이 이루어졌는데 위의 곡은 위대한 탄생 4기 시절의 멤버로 녹음이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 라이브에서 멤버들의 합이 절정에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라이브도 정말 훌륭하다는 것! 기회가 된다면 조용필의 콘서트는 꼭 가볼 예정이다. 가왕이 괜히 가왕이 아니고 가왕을 보좌하는 위대한 탄생도 보통의 밴드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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