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 주연배우 (1987)
D-day, 잠을 설쳤다. 긴장을 오래 끈 건 내 탓이니 누구의 탓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른 아침 계체를 하기로 되어있었고 간단하게 챙겨 입고 나가기로 했다. 나의 체급은 -100kg 이하, 싱글렛을 입은 상태에서 100.3kg 이하로 나오면 아무 문제없었다.
계체 시간이 다가오자 나와 오늘을 함께할 선수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나의 적이 아니고 나와 싸우려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준비해 온 자들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나의 계체는 100.00kg로 정말 체중을 딱 맞춰버렸다. 계체 때도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125kg로 출전하는 나의 코치는 "체급을 올리시는 게 어때요?"라고 제안하였으나 내가 한사코 거절을 했다. 나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계체가 끝나고 스쿼트 1차 시기의 무게는 180kg로 정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코치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든든하게 먹었다. 계체 후부터 대회 내내 뭔가를 계속 먹어줘야 함을 내게 세세하게 알려주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Flight A, B조는 전날 끝이 났고 C와 D조가 같은 날에 이루어졌으며 나는 D조였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긴장감을 잠시만이라도 뒤로 미루고 싶었는데 밥을 먹는 내내 많은 대화가 오가지 못했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1차 시기의 성공하느냐였는 걸?
"Bar is loaded!"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시작을 알리는 소리, 나의 차례가 오기까지 아내가, 코치님이 말을 걸었는데 이 사람들... 내가 긴장한 걸 알아차리고는 긴장을 풀려고 계속 놀려댔다. 그래 맞아요. 긴장했었어요 정말로요.
그래도 말끔하게 1차 시기를 덤덤하게 준비했다. 180kg? 적어도 나에겐 가벼운 무게였으니 두려울 건 또 뭐람? 주물원판?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내 어깨를 짓누를 무게는 익숙했다.
결과는 대성공! 스쿼트 1차 시기를 말끔히 성공하니 긴장도 없어지고 말주변이 살아 돌아왔다.
코치님과 무게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2차 시기의 무게를 바로 200kg로 올리느냐 조금만 올리냐로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였으나 코치님의 말을 듣기로 했다. 한 종목만 하는 게 아니니 에너지를 많이 쓰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 코치님이 존재가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감사한 일이다.
스쿼트는 최종 200kg로 마무리했다. 3대 500kg 중 200kg가 채워졌으니 남은 두 종목을 알맞게 설정해서 목표를 넘겨야 했는데 내가 가장 약한 종목이 바로 벤치프레스였지만 1차 시기의 무게는 110kg, 이것만 성공하자는 목표점을 잡고 실제로 성공을 이루어냈다. 대신 급진적으로 무게를 올리는 방법을 극도로 꺼렸기에 2차는 115kg, 그리고 성공 후 3차에서는 뭔 자신감이 붙었는지 122.5kg를 하였으나 바로 실패!
사실 벤치프레스에는 큰 자신이 없었는데 나 자신을 속이기엔 버거웠다. 지켜보는 많은 분들이 나의 성공을 빌어 주셨지만 부응하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한 종목, 데드리프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딱! 세 번만 잘하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1, 2, 3차 시기까지 실패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1차 시기 무게는 200kg, 사실 이것만 성공하면 나의 목표 3대 500kg는 무난하게 성공이었다. 같은 곳에서 경기하는 사람들이 자기일처럼 환호를 해줄 때 가장 고마웠다. 물론 나도 그들을 응원하였지만 내가 응원을 받을 때는 무게가 정말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1차, 2차, 3차 시기 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어느 덧 모든 경기가 끝이났다. 그렇게 해서 나의 최종 결과가 나왔다. 스쿼트 200kg, 벤치프레스 115kg, 데드리프트 215kg로 도합 530kg! 나는 나의 첫 대회를 그렇게 마무리 했다.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에서 누군가는 상을 받았고 누군가는 상을 받지 못했다. 물론 나도 상을 받지 못했다. 상을 받기에는 대단한 실력과 힘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정말 다행인 것은 많은 사람을 얻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빠른 시일에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그때보다 조금 더 무거운 무게를 건드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대회가 그렇게 끝이 났다.
1986년, '헤비메탈'로 무장한 세 팀이 같은 해에 데뷔한다. 시나위, 백두산, 부활이 그랬다. 시나위는 신대철과 보컬 임재범을 주축으로 시작부터 강렬하게 내던졌고 백두산은 헤비메탈을 표방한다고 하나 다소 대중가요스러운 스타일의 곡을, 부활의 시작은 기타로 내는 종소리로 각기 다른 매력을 1986년에 뽐냈다. 누가 더 대단했는지는 굳이 물어보시지 마시라. 세 팀이 없었다면 헤비메탈 트로이카는 없었을 테니...
백두산의 2집에 수록된 이 곡은 1집에서의 뽕이 묻어나는 스타일을 아예 버려버렸다. 보컬의 유현상, 기타의 김도균, 베이스의 김주현, 드럼의 한춘근까지 넷이서 내는 소리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도 주목되는 팀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일본의 한 음악평론가는 백두산의 2집을 70점이라는 꽤나 높은 점수를 매기며 당시의 음악성을 칭찬하기도 했다.
당시의 헤비메탈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의 대마초로 인하여 당시의 록씬이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백두산의 2집 수록곡 일부가 방송금지 처분을 받은 것도 모자라 가장 젊은 멤버 김도균이 탈퇴까지 하면서 해산하기까지 이른다. 물론 다시 재결성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백두산의 4집에 이 곡이 리메이크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