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돌아온 모에카

<연재소설> 땡감이 영그는 시간

by 헤모아

렁보 씨가 죽은 날부터 나는 그의 영혼을 위해 묵상하기 시작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일 미사도 거의 안 가던 내가 매일 미사에 나가고 미사를 못 간 날은 재단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성실하게 기도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냥 우두커니 앉아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가여운 영혼을 구원해 주소서’라는 짧은 문장을 한숨과 함께 내뱉는 게 전부였다. 뭐라고 기도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기도를 쥐어짜다 지치면 어느새 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랬다 저랬다 두서없는 생각들이 하루를 가득 채운다. 죄책감을 느끼다 지치면 원망하고, 갑자기 끔찍하게 무서워지다 인생이 헛되이 느껴졌다.


내 샴페인이 그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 위태로운 그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렁보 부인을 욕하다, 시신과 3센티 두께의 문을 사이에 두고 밤을 지새운 날(렁보 씨의 시신은 새벽 6시가 넘어 운구되었다.)이 떠올라 오싹해하다, 피자를 주문할 때 렁보 씨는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만찬인 걸 몰랐겠지, 그런데 그것마저도 한 입 먹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허무했다.


이렇게 여러 생각으로 내내 속이 시끄럽고 마음도 무거웠지만, 안색이 안 좋다고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난 그냥 별일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거로 보였을 테고, 나 역시 굳이 불편한 속내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일상을 버텨냈다.


그 누구에게도 렁보 씨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딱히 말할 상대도 없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겹겹이 쌓여가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앞 건물 2층 여자가 준 빌어먹을 숙제가 며칠 만에 고마워질 줄이야. 작업 도구를 정성스레 세팅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영 집중이 되지 않아 과자만 집어 먹고 있다. 머리가 이렇게 복잡한데 입맛은 그대로라니… 다행인 건지 걱정해야 하는 건지 이것도 헷갈린다.


갑자기 벨이 울렸다.


이제 이 건물에는 나뿐이고,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누굴까 궁금해하며 외시경을 보니 반가운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모에카를 보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를 보며 씨익 웃던 그녀가 현관을 통과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변한 건지, 그녀를 보는 내 시선이 변한 건지 여하튼 그녀가 달라 보였다.


“앞으로 어디 가면 간다고 말 좀 하고 갈래?”


나의 첫마디에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어디까지 물어봐도 되려나. 잠시 고민하다 우선은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왼쪽 팔을 가득 메꾼 자해의 상처를 처음 봤을 때처럼 아무것도 못 본 척, 모르는 척하기로. 그녀가 먼저 입을 여는 날까지 묻지 않기로.


“민! 정말 작업하기 시작했구나?”


집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내게 쉴 새 없이 질문을 퍼부으며 자신에 관해서는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쓰는 수법을 썼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그간 있었던 온갖 일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집에 불이 났었다는 말, 그래서 기욤네에서 하루 묵었다는 말, 불이 난 후 앞 건물 여자가 나를 염탐했다는 말, 그래서 결국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책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는 말 등.


“뭔 일이 그렇게 많았던 거야?”


내 얘기가 끝나고 그녀의 질문도 잦아들자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문득 어쩌면 내가 질문해 주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싶은데, 먼저 말 꺼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일은... 잘 마무리하고 돌아온 거야?”


“그냥 그렇지 모.”


모에카가 시선을 피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녀의 의중을 알아챈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 침묵이 그녀의 마음을 재촉할 것 같아 더 할 얘기가 없을까 머릿속을 뒤졌다.


렁보 씨가 떠올랐다. 비틀대다 계단을 구르던 렁보 씨, 잘려나간 인터폰, 그의 기행에 지쳐 떠나버린 렁보 부인, 핏자국이 흥건했던 계단과 복도, 그리고 그의 죽음. 이 모든 불행의 시초가 나일 수도 있는 것까지. 가십처럼 가볍게 할 말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던 그날의 이야기를 모에카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이 불행의 시작이라면 난 어떻게 속죄해야 할까?”


“여기 지천으로 널린 게 샴페인이고 와인이야. 너 때문일 리 없어.”


내가 꼭 듣고 싶었던 그 말.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쉽게 해방되기에는 내 죄의식이 너무 무거웠다.


“……”


“샴페인 한 병에 무너질 사람이면 언제든 무너지지.”


“......”


“자책할 필요 없어.”


“그날을 계속 복기해 보고 있어. 정말 그가 쓰러지는 소리가 안 들렸었나, 하루에도 몇 번씩 벨을 누르던 사람이 안 눌렀는데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평소에는 그렇게 예민한 내가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 사람이 그렇게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은 건 참 슬픈 일이야. 그런데 슬퍼는 해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


“사실 내가 보기엔 너도 피해자야. 안 봐도 될 걸 봤고, 안 겪어도 될 일을 겪었고 그 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 그렇다고 렁보 씨가 가해자라는 얘기는 아니야. 네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가해자가 아니란 거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돌아가신 분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를 발견한 사람이 네가 아니었던 건 하느님이든 돌아가신 네 아버지든 누군가 널 지켜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외시경으로 본 거로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가까이에서 직접 목격하고 상황을 처리해야 했다면 그 트라우마를 네가 어떻게 감당하겠어? 평생 힘들어할 거 아니야?”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지켜보던 모에카가 감춰둔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내놓았다.


“정 괴롭다면 나처럼 해 볼래?”


“어떻게?”


모에카는 궁금해하는 내 눈을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밖을 보는 듯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나 때문에 시작된 불행이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을 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속죄해.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을 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돕는 거지. 내 정성이 쌓이고 쌓여서 흘러가다, 돌고 돌아 내가 해결하지 못한 내 불행에 닿으면 나와 같은 마음의 누군가가 나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모에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힘들게 꺼낸 말인 건 분명하다.


“난 사실 세상의 모든 종교를 믿어. 미신까지도 다. 그렇게 열심히 온 만물에 기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행을 다 하는 거지. 그러다 보면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날이 와도 누군가 우리 하루토를 사랑으로 돌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하루토. 모에카의 큰아들 이름이 하루토였구나. 모에카를 닮은 아이가 대바늘로 한 땀 한 땀 목도리를 뜨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너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거니, 묻고 싶고, 듣고 싶고, 위로해 주고 싶지만, 비난의 잣대를 품은 질문과 제안을 수없이 견뎌야 했을 그녀에게 먼저 묻고 싶지 않다.


창밖을 보던 모에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실 먼저 울기 시작한 건 나였다.


못 본 척했지만, 모에카가 현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녀의 목에 두른 찬란한 색동 머플러가 계속 내 눈물샘을 자극했고 그녀가 말을 시작했을 때 이미 눈물이 가득 차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하셨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힘든 일을 더 겪는 걸까. 힘든 일을 감당하지 못할 속 좁은 인간들은 큰 시련 없이 잘 살고, 잘 견뎌낼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은 어려운 숙제를 받아 그 숙제가 빨리 끝나길 바라며 열심히 기도하고, 선행을 베풀며 더 착해지고, 그래서 더 힘든 숙제를 받고, 또다시 열심히 기도하고, 선행하고….


모에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닿았다. 내놓기 힘든 얘기를 기꺼이 꺼내어 날 위로하는 그녀가 고마웠고, 일본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야윈 모습으로 돌아온 걸까 가슴이 아팠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그녀의 깊은 아픔이 결국 참고 참았던 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같이 아파하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미안했다.


내가 하도 울자 모에카는, 근데 너 왜 이렇게 울어? 누가 죽었어? 하며 울다가 웃기 시작했고, 나는, 렁보 씨가 죽었잖아. 너무 가엽고 미안해서 미치겠어.라고 둘러대 버렸다.


“너도 나처럼 해.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죄책감 느끼며 괴로워하지 말고. 자책하는 마음이 증오하는 마음보다 더 위험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칼을 꽂으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버리거든.”


모에카가 울고 있는 내게 휴지를 건넸다. 나는 그녀의 눈을 처음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 내 모든 기도의 끝은 하루토가 될 거야.”


*


바닥을 모르고 가라앉던 마음이 모에카를 만난 후 한결 편해졌다. 말 한마디 위로에 이렇게 홀가분해질 수 있다니. 내가 가벼운 건지 모에카가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 마음을 내리누르던 죄의식은 옅어졌고, 렁보 씨를 위한 추모 기도도 훨씬 맘 편히 하게 되었다.


오후 4시, 에디를 데리러 집을 나서는 데 건물 입구에서 두 명의 여자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렁보 씨를 꼭 닮은 단발머리 할머니와 렁보 부인이었다.


건물을 나서며 렁보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아득해졌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힘드시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고 말을 건넸다. 말을 시작했을 때 목구멍이 갑자기 조여들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내 말이 잘 안 들렸는지 렁보 부인이 내게로 다가왔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나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다시 한번 조의를 표했고 그녀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옆에 서 있던 렁보 씨의 어머니는 담배를 끄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전 오후 5시에 귀가했어요. 집에 들어온 후 밖에 나갈 일이 없었고요. 제가 렁보 씨를 빨리 발견했었더라면 사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사고였는 걸요.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할 말이 끊기고 불편한 침묵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인사를 건네며 건물 안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등 돌린 그녀를 향해 다시 한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기…”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말을 다시 건 건 나였지만, 내심 그녀가 못 듣고 그냥 건물로 들어가 버리길 바랐었다.


“사실 지난번에 말씀하신 샴페인 선물, 그거 제가 드린 거였어요. 친절하신 렁보 씨가 고마워서 선물한 거였는데… 치료 중이신지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가 어떤 말로 날 비난해도 이해하자 마음먹었지만 심박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왜 미안하다고 하시는 거죠?”


나의 예상과 크게 동떨어진 대답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제가 드린 샴페인 때문에 치료가 수포가 된 것 같아서요.”


갑자기 렁보 부인이 단호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사람은 여섯 번이나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했었어요. 그러고도 못 고쳤죠. 술에 취해 넘어져서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서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장이 파열돼서 수술한 적도 있어요. 정신과도 다녀보고, 반려동물도 키워보고.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오죽하면 제가 포기하고 떠났겠어요?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더 이상의 입원 치료는 불가했고, 아내인 저 역시 지켜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지켜보는 거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죄책감 드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긴 해도 죄의식을 느끼진 마세요.”


나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렸다.


“그를 바꾸려 끝없이 애쓰는 절 보며 정신과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스스로의 마음 안에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을 바꿀 길은 없다고. 당신이 준 샴페인 때문이 아녜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을 얘기하는 거예요.”


“......”


“제가 그날 샴페인 얘기를 했던 건, 남편이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나 싶어서 화가 났기 때문이에요. 단지 그 이유였어요.”


말을 마친 렁보 부인이 인사를 건넨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떠난 후에도 잠시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내면의 힘이 바닥난 사람을 구할 길은 없다는 말. 아무리 주변에서 애를 써도 스스로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 무서웠다. 무력감이 밀려들려 할 때 모에카의 말이 떠올랐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회색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여운 영혼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완벽한 소멸을 원할까, 아니면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시작을 원할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제 편안해졌기를.


나는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에디를 향해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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