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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리 Nov 03. 2022

웨딩드레스

웨딩드레스


 지인 딸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신랑이나 신부 하객이 아닌 지인의 아들, 딸 결혼식 하객은 아직 많이 낯설다. 어느 편에서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인원 제안을 두고 치러지는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으니 축의금으로 인사만 하기에는 좀 그랬다.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파티에 가는 듯 한껏 차려 입고 나서고 싶었다. 신부도 신부의 어머니도 아름다움을 한껏 과시하는 결혼식장에서 나마저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속내는 무엇일까? 축하를 해주기 위해 간 자리인데 내가 주목받고 싶은 심리는 무엇일까? 

 웨딩드레스. 일생에 단 한번 젊은 날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는 옷. 미혼과 기혼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의 절정을 뽐내는 그 옷에 대한 로망이 있다. 결혼식에 가면 꼭 신부 대기실부터 찾는다. 그리고 신부보다 신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에 눈이 먼저 간다. 샹드레 불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나는 새하얀 웨딩드레스, 퍼프소매에 하늘거리는 실크 드레스에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한다.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을 오버랩해본다.

 17년 전 늦가을, 단풍잎만큼이나 다채로웠던 감정들이 생각난다. 8년이라는 시간을 한 사람과 연애했다. 오래된 연인이 그러하듯 우리는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의무적인 만남을 지속했다. 결혼도 지금의 시동생이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형 먼저 보내야 한다고 시댁에서 밀어붙여 떠밀리듯 진행되었다. 추석 명절이 끝남과 동시에 양가 상견례가 이루어졌고, 신혼집도 남편이 살고 있던 조그마한 임대 아파트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 12월 19일 한 겨울로 서둘러 정했다. 예식을 준비하는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자주 부딪혔다. 갈등의 원인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가령 결혼식 장소라든가 신혼 여행지, 또는 웨딩촬영이나 예복, 예물 등 지금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그때는 세상의 전부인 듯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기선을 잡지 않으면 결혼해서 사는 동안 평생 잡혀 살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오기가 발동되는 바람에 더 기를 쓰고 다퉜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8년이라는 연애 기간이 무색할 만큼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퉜다. 과연 앞으로 이 사람과 평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 결혼식을 엎었다 뒤집었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날짜는 성큼성큼 잘도 다가왔다. 남편은 전통 혼례를 고집했다. 나는 신혼여행지로 해외를 택했다. 결국 우리는 몇 가지 타협점을 찾아 조금씩 양보하는 범위에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 그 밖에도 소소한 일들이 많았지만 대체로 남편이 맞춰주는 척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말발 좋은 남자와 살면서 얼마나 많은 트러블이 있을 것이고, 또 그때마다 얼마나 많이 다퉈야 하는지를 생각했던 것이다.

  2004년 12월 19일은 겨울이었지만 날이 정말 따듯했다. 한옥마을 전통문화관 야외에서 펼쳐질 결혼식 날씨로는 최상이었다. 쏟아지는 햇살은 포근했고 하객들은 너나없이 즐거워했다. 하얀 웨딩드레스가 아닌 오색찬란한 활옷을 입고 홀로 가마에 앉은 나만 빼고는 모두가 이 상황을 만족해하는 듯했다. 야외 마당은 넓고 화려한 반면 내가 탄 가마는 정말 비좁았다. 엉덩이부터 들이밀며 뒷걸음으로 들어선 가마에 앉아 간신히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았지만 그 후 어떤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다. 가끔 가마 옆에 달린 작은 창이 열리며, 축하한다는 말과 참 곱다는 인사말을 받았지만, 나는 쉽게 웃어 보일 수가 없었다. 결혼의 출발점이 된 이 가마 안이 갑갑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빼꼼 열린 작은 창으로 쏟아진 빛에 눈이 시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때부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아보려고 했지만 흔들린 탄산수처럼 한 번 터진 눈물샘은 멈추질 않고 솟아올랐다.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던지 보는 이들이 다 민망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예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터져버린 눈물샘 때문에 그 이후의 일들은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먼저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오른쪽 렌즈 하나가 빠져버린 것이다. 고개만 간신히 돌릴 수 있는 좁은 가마 안에서 어딘가에 떨어졌을 한쪽 렌즈를 찾아 헤맸다. 비좁은 가마 탓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다. 결혼도 그런 것일까? 둘이 합쳐 하나가 된다지만, 부모님의 품을 떠나, 이제 더 이상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것? 그러는 사이 식이 시작되었고, 천천히 가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눈이 없다고 생각하니 보통 어지러운 게 아니었다. 결국 가마에서 나오는 시간까지 나는 렌즈를 찾을 수 없었고, 한쪽 눈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눈이 안 보이니 사진 찍는 내내 자연적으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거기에 아이라인에 쉐도우까지 번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신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도 나는 결혼식 사진을 보는 게 불편하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세상 예쁘게 웃고 있는 신부가 아닌, 두 눈이 퉁퉁 부운 시커먼 얼굴과 이마며 볼에 찍힌 연지곤지, 오색찬란한 활옷을 입은 어릿광대 같은 신부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인의 딸이 신부 대기실에서 나온다. 수 만개가 넘는 반짝이 구슬이 달린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베일, 화관을 쓴 신부가 천천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무대 위에 선다.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 피아노 선율에 맞춰 아버지와 보폭을 같이하며 걷는다. 몇 걸음 앞에 기다리는 신랑을 향해 미소 짓는다. 아버지의 손을 놓고 가볍게 포옹 한다. 아버지가 신부의 등을 다독인다. 신부가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 등에 기대어 검지 손가락을 펴 눈물을 닦아낸다. 하얀 장갑에 먹물이 고인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울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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