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문화
투자를 고민할 때나, 주변 지인들과의 네트워킹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잘 알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걸 많이 느낀다. 인풋과 아웃풋의 밸런스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이게 도움이 되는 때가 과학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이다. 나는 과학 강사이지 점쟁이는 아니어서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나, 인문학을 좋아하는 과학 강사로서 산업혁명에 따른 과학 기술의 발전과 문화에 대한 인사이트는 재미있는 스몰토크 주제로 다루곤 한다.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경제·사회 구조의 대변혁으로, 인류의 생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류의 산업혁명에 따른 주요 산업, 소득 수준, 소비 가치관 등의 변화로 식문화와 의복문화가 발달해 왔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 경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식문화는 지역의 기후와 자원에 크게 의존하였으며, 대중의 식단은 주로 곡물, 채소, 육류 및 유제품과 같은 단순한 재료로 구성되었다. 귀족층만 사냥과 무역을 통해 다양한 식재료를 접할 수 있었으나, 이 또한 상온 유통이 가능한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일반 대중은 잉여 생산물이 많지 않아 계절에 따라 제한된 음식을 소비하였다. 이때의 문화가 지금의 제철음식, 시절음식 문화로 계승되었다. 겨울에는 방어를 먹고, 정월대보름에는 나물밥을 먹는 것이다. 의복문화는 신분제에 의해 구별되었다. 귀족과 상류층은 비단, 모직, 금실 자수를 포함한 화려한 의복을 착용한 반면, 하층민은 견고하면서도 실용적인 천으로 만든 소박한 옷을 입었다. 이러한 시기에는 의복이 신분과 부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였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방직기 등 기계의 발달을 통해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하였다. 공업 생산이 활발해짐에 따라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교통망이 확충되며 식재료와 의류의 유통이 더욱 용이해졌다. 철도와 증기선의 발달로 원거리에서 식자재가 신속히 공급되었으며, 각국의 향신료, 커피, 설탕 등 수입품이 일반 대중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공장에서 생산된 통조림 및 가공식품이 등장하여, 보존성과 편의성이 향상되었다. 외식문화의 싹이 트며, 도시를 중심으로 카페, 레스토랑과 같은 사교 공간이 늘어났다. 더불어 방직기술의 혁신과 면직물 대량생산으로 의류 가격이 크게 하락하여 중산층 및 노동자 계층도 다양한 의복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패션잡지의 보급으로 최신 유행이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패션’이 점차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남성복은 기능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형태로 변모하였고, 여성복은 코르셋과 크리놀린 등 부피감 있는 드레스가 유행하였다. 가히 혁명적인 기술의 발달로 이 시기부터 상류층과 하층민의 생활수준이 중산층 정도로 가깝게 수렴하기 시작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부터 화학, 철강, 석유 산업의 발전과 함께 대량생산 체제를 한층 강화하였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노동 시간의 단축으로 인해 여가 및 소비문화가 발달하였다. 냉장 기술 및 운송 기술의 발달로 신선한 식재료가 계절에 상관없이 공급되었으며, 유제품 및 육류 같은 높은 에너지원이 되는 포화지방을 포함한 식품의 소비가 급증하였다. 패스트푸드가 등장하며, 식사의 간편성과 신속성이 중시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 시기를 주도한 영미권 나라들의 식습관은 그대로 굳어져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의 고도화로 인한 영국의 맛없는 대중식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미국은 고칼로리 패스트푸드로 인한 높은 비만률의 국가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한편, 가정에서는 가스레인지 및 전기오븐 등 신기술이 도입되어 요리의 효율성이 증대되었다. 재봉틀과 대량생산 공정을 통해 기성복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의류 구매가 더욱 대중화되었다. 영화, 광고, 유명 인사들이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며, 유행이 더욱 빠르게 변화하였다. 여성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활동성이 강조된 실용적인 의상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남성복은 모던하면서도 단정한 양복 스타일이 확립되었다. 이때부터 사무실에서 종이를 다루는 화이트칼라와 현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블루칼라라는 직군 기준의 새로운 신분 형태가 나타났다.
3차 산업혁명은 스마트폰에 의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해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를 가속하였다.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며 소비자들은 더욱 다양하고 개인화된 상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글로벌 무역 확대로 인해 각국의 요리가 대중화되며, 다문화적인 미식 문화가 형성되었다. 패스트푸드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 및 비건 트렌드가 부상하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요리 레시피 공유 및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되었다. 또한 패스트패션이 부상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소비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문화가 자리 잡았다. 환경 보호 및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중시한 친환경 소재와 공정무역 제품이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나와 같은 01년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하여 이렇게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하는 현상이 익숙한 세대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지속적인 물가상승으로 사람들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가치와 의미를 중시하는 ‘가치소비’ 경향을 보이고 있다. 푸드테크(Food Tech) 산업이 발달하며, 인공육, 배양육 및 식물성 대체 식품이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건강 지향적 식습관이 더욱 강화되었고 SNS를 통한 미식 체험 및 요리 콘텐츠가 확산되며, 디지털 공간에서도 식문화가 활발히 교류되고 있다. 패션에서도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더욱 존중받게 되었다. 더불어 중고 의류 거래 플랫폼, 렌탈 서비스 등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소비 형태가 확산되었다. 나아가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디지털 패션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