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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과학편

산업혁명과 거래

by cherry

산업혁명으로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며 시장경제가 발달하였다. 국가 간의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화폐를 통일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며 기축통화에 대한 개념이 생겨났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세계 경제의 중심을 영국으로 이동시켰으며, 이에 따라 영국 파운드화(GBP)가 국제 무역과 금융의 중심 통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영국은 방대한 식민지와 해상 무역망을 기반으로 금본위제를 확립하며 파운드화를 국제 결제와 신용의 기준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오늘 날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국가가 영국의 금융기관에 금을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함께 영국의 경제력이 쇠퇴하고 미국이 신흥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힘의 논리에 따라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미국 달러(USD)가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축통화로 지정되었다. 이후 1971년 닉슨 쇼크로 금본위제가 폐지된 후에도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금융과 무역의 중심 통화로 자리하며,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기축통화의 변화는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과 함께 지속되어 왔다.

인류 역사가 낳은 가치저장 수단인 금과의 연결이 끊긴 달러가 여전히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의 강력한 국방력과 주요 원자재인 석유와의 연결성이다. 특히 석유가 달러로 거래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즉, 석유를 지하에 흐르는 액체 금으로 보는 것이다. 화폐의 발달에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이야기를 빼기 어려운데 석유가 액체 금이라면, 암호화폐은 디지털 금인 셈이다. 암호화폐는 큰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정해진 공급량 한계로 가치보존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탈중앙화로 거래에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외신에 암호화폐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 국채 금리가 향상하며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 게다가 암호화폐를 지지하는 측의 표도 얻을 수 있으니 공화당 입장에선 1석2조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 정권은 암호화폐를 달러의 대항마로 이용하여 정부 부채를 안정화 시킬 계획으로 보인다.

그럼 비트코인이 새로운 기축통화가 될 것이냐 하면, 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암호화폐는 그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데 전부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각 나라의 가계부가 서로에게 상호 공개되는 셈이다. 이는 모두가 켕기는 게 없어야하는데 그건 매우 적은 확률이다. 만약 어떤 나라가 전쟁에 대비하여 물자를 여기저기서 사 들인다고 상상해 보자. 그 순간에 물자를 공급한 나라와 공급하지 않은 나라로 진영이 나누어지고, 물자 공급량으로 전략 예측이 가능해진다. 평화가 깨지는 것이다. 공포와 불안에 관여하는 뇌의 편도체는 불확실성을 회피하려 하고, 이는 손실을 이익보다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편향으로 나타난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 정착을 하듯 인간은 먹고 살만해지면 안정을 원하기 마련인데 직접적인 전쟁을 겪지 않은 온실 속 화초 같은 세대가 그러한 불안정한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비트코인이 단독으로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가치저장 수단 중 하나로서 석유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와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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