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권리, 아동인권에 대한 오해
우리 아이는 아빠와 놀려고 밤에 자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애는 먹기 싫은 음식은 끝까지 안 먹으려고 해요. 이 아이들의 생각과 의사를 무조건 존중해야 하나요?
아이를 키우면서 무엇이 옳은지, 혹시나 내가 잘하고 있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자녀양육에 관해서 드는 질문은 대부분 정답이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질문을 수차례 접하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공통점 첫 번째는 일반적인 보호자들은 대부분 옳게 행동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둘째, 보호자들은 아동권리나 아동인권에 대한 부분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적어도 학대하는 보호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며 아이들 뜻대로 해주는 것이 (확신은 없지만) 아동권리라 여긴다.
보호자는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받아주고자 한다. 이것이 아동인권을 보장하거나 아동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좋은 생각이며 좋은 보호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이다. 다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아동인권 전부는 아니다.
먼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간단치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동인권의 개념과 어린이 발달적 특성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인권과 아동발달을 각각 파악하기도 어렵고, 그 둘을 동시에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아동인권에는 국제적 기준에 더불어 우리나라 사회문화적 맥락도 포함시켜야 한다. 아동발달적 특성에는 보편적 발달원리와 더불어 그 아이만이 가지는 특수한 측면도 포함시켜야 한다.
아동인권은 아이들이 가진 존엄성과 권리를 인정받고, 보호받으며,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들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보호자는 아이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동시에 보호자는 그들이 아직 완전한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충분히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보호자의 적절한 보호와 안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가끔 우리는 아이들을 너무 완성된 인간으로 여길 때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에 있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주로 인지능력, 경험부족, 충동조절 능력 미숙으로 생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아이들의 뇌는 호기심과 본능을 조절하면서 위험과 안전을 구분하는 능력을 발달해 가는 과정에 있다.
아이들은 위험을 판단하거나 위험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자신이 슈퍼맨이 되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유리창에 몸을 부딪치기도 한다. 뜨거운 다리미나 끓는 전기포트를 만지려 한다. 더 어린아이들은 작은 단추나 동그란 자석을 음식물과 구분하지 못해 본능적으로 입에 가져가 삼키려 한다. 이렇게 아이들 생존과 안전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발견할 경우에는 아이 의사에 반하더라도 보호자는 바로 개입해서 멈추는 행동을 해야 한다.
잘못된 판단은 아이들이 인내심을 갖고 미래 예측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이들은 눈앞에 바로 보이는 보상이나 만족을 위해 행동할 때가 많다. 그 유명한 스탠퍼드 연구팀의 '마시멜로 연구'에서 4~6세 아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단 15분이다. 이 시간 동안 아이 혼자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는 도전이었다. 아이들 인생에는 15분보다 더 길게 인내하되, 맛있는 쿠키 같은 보상이 없거나 불투명한 일이 널려 있다. 사이좋게 미끄럼 타기 순서를 기다리기보다 당장 놀고 싶은 마음에 새치기를 한다. 해야 할 숙제를 미루고 온라인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길게 사용해야 할 용돈을 모으지 않고 바로 사용해 버리는 행동도 있다. 아이들은 장기적인 결과나 미래 이익을 고려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보상에 이끌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또래 압력이나 동료 압박에 영향을 받아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또래 압력은 비슷한 연령대의 또래들이 모인 집단이 개인에게 특정 행동, 가치관, 스타일, 태도를 따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또래 압력은 주로 청소년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예로, 영유아기 아이들은 특정 장난감이나 아이템을 소지한다. 비슷한 간식이나 놀이만을 고집할 수도 있다. 유행을 좇아서 고가의 옷이나 신발 등을 구입하고 혼자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만큼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감정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영유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적, 정서적 발달을 이뤄간다. 아이들은 자신과 타인 감정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발달해 가는 과정에 있으며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갈등과 오해 없이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유아들은 아무 표정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친구를 '화났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넘어져 '울음'을 터뜨린 친구가 느끼는 슬픔보다 놀이에 더 집중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친구에게 불쾌함을 주는 행동을 하고 유머와 장난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코로나 19 사태 이후 마스크에 가려진 상태로 지낸 아이들은 타인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간략히 살펴본 것처럼, 아이들이 현재 원하는 것이 항상 건강이나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인 우리도 얼마나 바보 같고, 해로운 판단과 결정을 하는가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의 잘못된 판단에 보호자의 지도와 안내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미흡한 경우는 왜 그러한가?
여러 요인이 있으나,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이에게 필요하고 우선적인 아동권리가 변하고 그에 따라 보호자 역할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아기 보호자 역할은 아동권리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다른 권리에 비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보호자 역할은 영아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이 우선한다. 생명권과 보호권을 지켜주기 위한 보호자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보호자 기여도가 높다. 쉽게 말해 보호자 역할도 비교적 분명하며, '안전하게 보호하겠다'거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원을 제공하겠다'라고 결정하면 아동권리가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물론 영아에게도 교육, 발달권과 참여권은 동등하게 필요하기는 하나 좀 더 복잡한 주제이다)
점차 아동이 성장하며 보호자는 생명을 유지, 보호하는 자원을 아동에게 제공하는 차원만으로는 아동권리 보장이 충분치 않다. 아이들은 인생주체자로서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러저러한 일에 대해 표현하고 결정하려 한다. '참여할 권리'를 행사하고자 한다. 아동이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하기 원할 때, 그 한 표를 막기보다 제대로 행사하도록 보호자역할이 필요하다.
양육과정은 보호자가 주도하다가 점점 더 아이들이 힘이 세지는 과정이다. 아이 자율성과 리더십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래서 보호자는 아이옆에서 부축하며 걷다가 언제인지 모르는 새 필요 없어진 지팡이 같다. 보호자의 지도와 안내가 없는 아이들은 지팡이가 필요한 데 너무 일찍 홀로 서는 아이들이다. 이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여러 이유로 지도와 안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그 책임을 회피한 어른들이 기억해야 한다.
올바른 아동인권의 실천은 아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되, 아이의 안전과 복지, 발달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성인은 아동의 보호자이자 지도자로서, 아이가 아직 부족한 판단 능력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동인권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의견이 적절하게 반영되도록 하되, 안전과 복지를 우선시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원하는 요구대로 해 주는 것"은 아동인권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아동인권을 전부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의 책임감 있는 지도와 안내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