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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은 Jan 07. 2022

끝까지 남아 인생의 위험을 제거해 줄 사람이 아니라면

아이에게 장미가시를 허락하라.

독일 학자 프뢰벨은 유치원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프뢰벨이 세운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오늘의 유치원, 어린이집에 이르렀다. 독일어 킨더가르텐은 아이들(Kinder)의 정원(garten)이라는 뜻으로 영유아가 자유로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 놀이터를 의미한다. 프뢰벨 사상의 핵심이다.


아이들은 즐거이 뛰어놀면서 배운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독일 유치원은 프뢰벨이 명명한 뜻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 듯하다. 독일 교육기관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로운 놀이를 최대한 장려하고 있다. 또한 성인의 개입과 교육적인 지도를 최소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기관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독일 킨더가르텐 몇 군데를 한국 유아교육 관계자들과 둘러본 적이 있었다.

방문한 여러 유치원 건물과 시설은 눈길을 끌만큼 세련되고 쾌적해 보였다. 반면 유치원마다 붙어있는 실외 놀이터는(유치원 건물에 들인 공에 비하면) 깔끔한 모습이라기보다 다소 밋밋하고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킨더가르텐에는 대부분 야외 마당이 있다. 보육실과 같은 실내 출입문을 열면 야외로 출입할 수 있다. 유치원 마당은 잘 가꿔진 놀이 터라기엔 뭔가 부족했다.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미끄럼틀이나 시소 같은 놀이시설물이 거의 없다. 비어있다. 대부분 자연 그대로 상태이다. 방치한 듯 보였다.


실외 놀이터, 자연스러움 그대로 

정리정돈이라면 둘째 가면 서러워할 정도의 독일 사람들이다. 그런데 독일 킨더가르텐 실외놀이터는 인공적인 냄새가 안 난다. 사람 손으로 이거 저거 변형하지 않고 자연스레 두는 것이다.


한쪽에는, 우리가 보기에 위험해 보이고, 미관상 이뻐 보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미 깎고 다듬었을 법한, 아니 뽑았을 모서리가 각진 상태 그대로인 화단 디딤대말이다. 마당 이곳저곳에는 크고 작은 돌덩이가 굴러다닌다. 깔끔하게 다 정리하고 벌써 치웠을 법 한데 그대로 둔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굵은 가시가 달린 덩굴들이다. 참관하러 간 영아반 교실 앞마당에서 발견하였다. 한국에서라면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며 아예 심을 생각도 안 하는 나무이다. 복분자(는 주로 야생이며 독일에서는 특히 두꺼운 가시와 억센 줄기 때문에 자연 울타리 구실을 한다)가 멀쩡히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있었으나 유아교육기관 평가에서 시정명령을 받은 항목이다. 기관평가에서 실점하지 않기 위해 유아교육기관 앞마당에 피어있던 장미 가시마다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 안았다. 급기야 나중에는 가시가 있건 없건 약간의 위험요소가 있을 만한 나무는 모두 없애버렸다.  


예쁜 장미 나무들이 마당 여기저기 가지를 뻗치고 있다. 아이들 교실과 맞닿아 있고 자주 드나드는 실외 놀이  터로 연결되는 통로도 모래와 흙이 넘쳐 미끄럽다. 마당 가운데에는, 아이들이 미끄러지기 쉬운 흙바닥이 경사지거나 움푹 파인 채 놓여있다. 모래가 깔리고 아이들이 얼마나 오르락내리락했는지 반들반들해진 작은 흙동산은 미끄럽고 군데군데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다. 아이들은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미끄러지기 위해 이곳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한다. 어떤 아이들은 넘어지는 경험을 한두 번 하고는 작은 언덕 그 주위를 돌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가기도 한다.


우리는 방문한 킨더가르텐의 원장이나 교사들에게 물었다.


마당 놀이터에 있는 복분자 나무 가시가 아이들에게 너무 위험해 보여요. 이대로 위험하게 나무가시를 제거하지 않고 놔둬도 되나요? 나무를 베거나 나무가시를 제거하라는 행정지도나 규정이 없나요? 이런 게 점검 사항이 안 되나요? 혹시 부모들이 이걸 보고 아이들에게 위험하다, 제거하라며 원장님, 선생님이나 관계기관에 항의하지 않나요?



위험을 제거하기보다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게 보호자역할

우리는 여러 군데 킨더가르텐을 갈 때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모두 서로 다른 기관을 방문하였으나 독일 유아교육 관계자들의 대답은 대부분 동일하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위험은 자연스럽다.

위험은 우리 인생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 주변의 모든 위험요소를 전부 제거할 수 없다.

인생의 크고 작은 위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이들은 배워야 한다.


부모나 교사의 역할은,

아이 주변의 위험을 없애는 게 아니라

닥친 위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대답한 후 그들도 다시 반문한다.  



너희는 왜 이런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을 묻느냐?




그러게 말이다. 공부도 할 만큼 한 사람들이, '교육'에서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인, 직접경험을 통한 성장의 원리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느냐 말이다. 그들이 도리어 반문하는 것을 들으면 나도 고민이 깊어졌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우리는 부러워하고 감탄하며 묻는가 말이다. 


작은 장미가시에 긁힐 때 아이들은 아프다,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다. 다음번에 그와 비슷한 상황을 접했을 때, 아이들은 그 이전의 경험을 떠올린다. 그리고 위험의 정도와 아픔의 크기 등을 가늠하게 된다. 이제 아이는 위험을 인식하며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을 궁리하게 된다. 이것을 피할지, 아니면 한번 더 경험을 해 볼지, 그도 아니면 선생님이나 친구를 불러볼 건지.. 결국 아이는 다른 나뭇가지를 가져와 휘어진 장미줄기를 한쪽으로 치우고 지나게 된다. 휘어졌던 나무줄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며 반동에 따라 휘청거리는 모습을 본다. 그것도 재미있다. 몇 번 장난을 해본다. 이제 장미나무는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놀이가 되었다. 나무에 대한 속성을 알고 다루게 된다. 그다음 날 아이는 친구를 데려와 자신이 이뤄낸 업적을 자랑스레 보여준다. 몇몇 아이가 장미가시를 만져본다. 나뭇가지를 건드려 본다. 휘어졌다 다시 돌아오는 반동에 스쳐 지났지만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아이가 가시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우리는 그림책으로 영상자료로 그것이 위험하다고 '설명'하려 든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게 맞나? 생각해 보자. 


일반 부모에게 당부한다. 유치원, 어린이집 마당에 장미나무에 드러난 가시를 보고 항의하지 말기를,   

교사는 아이가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살짝 넘어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격려해 주길. 인생의 여러 어려움을 다루는 시도에 성공한 꼬마 과학자의 스승으로서.




부모나 교사가 아이와 끝없이 함께 있을 것도 아니면서, 그 아이 인생의 매 순간마다 나타날 위험과 문제를 일일이 다 풀어줄 수도 없을 거면서, 어른 손바닥에 평생 있을 것처럼 키우는 걸까? 어쩌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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