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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Jun 19. 2024

고집의 부재    

바르셀로나 1.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나는 인생의 40년이 넘는 세월을

하나의 작품에 매진할 수 있을까?






스물한 살, 처음 대학 도서관에서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 가우디>라는 책을 꺼내 들어 뭔가에 홀린 듯 하루 만에 정독을 마치고 마지막 장을 탁 덮었을 때 나의 대답은 "글세요"였다.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이 뛰어나도 창의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모두가 놀랄 결과물을 만들어도 그다음엔 이걸 또 뛰어넘어야 할 것 같아서, 매일 스스로를 인정 지옥에 가두고 괴롭히며 한 사람의 평가에도 마음을 졸이며 이것이 예술인지 고문인지를 의심했고, 고작 한 학기 과제물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리는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우연히 꺼내 든 책 속에서 발견한 이 건물도 오브제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을 두고 가장 처음 했던 생각은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였다. 이런 아드레날린이 갑자기 어디서 솟구쳤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이고자 했는지 그 이유가 미친 듯이 궁금했다. 그리고 만약 그 의문이 풀린다면 나의 미술 인생에도 약소하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후 도서관에 예술과 건축 섹션을 틈만 나면 기웃거리며 혼자 20일간의 스페인 일주를 계획했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유의미한 사실은 스페인은 가우디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고, 독보적인 현대적, 역사적 건축물 또한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은 건물들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총 7개의 도시를 방문했고



가우디의 행적을 쫓으려던 미대생의 여행 코스는

<스페인 건축 기행>으로 판이 커지고 말았다






Barcelona

chapter. 1


2017.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성가족 성당) -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불타는 아드레날린으로 계획했던 이 건축 기행은 칠흑 같은 미술에 크나큰 회의감을 느끼고서야, 처음 계획 한 후 6년이라는 사회 속 절임의 풍파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떠날 채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 참, 한 치 앞도 모른다.


좋아서 시작 한 것이 의문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붓을 잠시 놨고, 어쩌면 현실 도피, 또 어쩌면 훌륭한 대상을 바라봄으로써 강력한 동기부여를 얻어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바르셀로나, 나는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무작정 그곳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서서히 그 답이 보였다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가 정한 노력의 한계가 있다. 이만하면 내가 정말 많이 노력했다고 하는 셀프 인정의 한계. 성가족 성당의 '탄생의 파사드' (파사드 :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를 보고 있으면 이걸 만든 이의 진짜 한계가 궁금해진다.


웅장함과 섬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성당의 외부는 사람, 동물, 자연과 같은 것들을 조각한 조각상으로 빈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좋게 말하면 꽉 찬 스토리, 나쁘게 말하면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 답답함에서는 처절한 절규, 어두운 미래, 피어나는 희망 같은 것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가우디는 아주 작은 신생아 조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병원에서 직접 죽은 아이의 시신을 가져왔다."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 가우디>


그에게 건물을 짓는다는 행위는 어디까지의 노력을 수반해야 만족할만한 것이었던 걸까?



과연 내게는

시체까지 들춰낼 만큼

간절히 이뤄야 할 것이 있을까?








대낮에 성당에 도착해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노력으로 창의성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재능이며 타고나는 것이다.”라는 흔한 말에도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창의성이란 대체 무엇일까. 


무작정! 새로우면 되는 걸까?

어떻게 한 거야? 싶도록 복잡하면 되는 걸까?

아님 탁! 단순하게 전달하면 되는 걸까?


나는 성당 내에서 혼자 조용히 아주 긴 시간을 머무르며 그동안 단련해 온 나름의 노력이라는 단어 역시 얼마나 의심스러우며 주관적인 잣대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하나의 세계와도 같은 이 공간에서

모호하지만 무한한 창의력의 빛줄기들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기분이었다








"인간은 창조하지 않는다

다만 발견할 뿐이다."

- Antoni Gaudi -


그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성당 한편에 있는 전시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독특한 디자인은 역사나 문화적 영향도 있지만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가 제멋대로인 자연에 대한 탐구 정신에서 비롯됐다. 자연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끈질긴 집념이 딱딱한 건물에 부드러운 곡선의 춤을 드리웠다.



표현에 대한 갈증이 예술가를 만들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 세상에 없지만 그의 미완의 세계를 끝까지 완성시키기 위해 그와 같은 타는 목마름으로 많은 이들이 이 끝 모를 레이스에 바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창의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의성이란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는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뜨거운 관심과 관찰 그리고 상상도 못 할 인내심으로 자신의 주관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고집스러운 힘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약했기 때문에

예술이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딱히 부릴 고집이 없었던 거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저리 비켜 내 길 간다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짱 나게 부려볼 고집말이다


고집 없는 예술은 결국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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