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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Jun 26. 2024

기도라는 것을 해봤다

바르셀로나 2. 바르셀로나 대성당


신을 믿는가?


아니,

그런데 어쩌면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가 사람들이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무서워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대성통곡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검은색 책을 들고,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이(그래 보였다) 몽롱한 표정으로, 무척이나 이상한 가사(그렇게 들렸다)의 노래를 불렀다.


영광 영광

그것도 모자라 또 영광이라고 했다


서로의 생각이 끼어들 틈은 없었고,

왜들 저러는 건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텅 빈 벽에 걸린 왠 반 나체로 있는 남자가 못 박혀 있는 십자가 마저 어린 여자 아이에겐 그저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의 울음소리는 상당히 큰 데시벨을 자랑했지만 찬송가라는 떼창에는 속절없이 묻혀버렸고 할머니는 내 닭똥 같은 눈물을 발견하고서야 내가 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교회 밖으로 나갔다.


그 후 어른이 될 때까지 교회를 내 발로 찾아가는 일은 없었다.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따지자면 나는 안 믿는 쪽이었다. 딱히 엄청난 이상이나 가치관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심이 든다. 그런 이에게 썩 기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교회라는 곳에서는






Barcelona

Chapter. 2


2017. 바르셀로나 대성당


발렌시아 행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글 지도에 의지해 다니던 뚜벅이 미대생 여행자는 그곳이 그 유명한 바르셀로나 대성당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예상치 못한 우연적 만남은


들어갈 때의 나와 나올 때의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의 입구가 툭툭 터치한 거친 유화의 느낌이라면,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한 선 한 선 세밀하게 그려낸 펜화 같았다. 그 섬세한 건축물 안으로 발을 들인 순간, 나는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엄숙하고도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성당 안은 굉장히 조용하고 어두웠다.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혹여나 소리가 크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그러면서도 두 눈은 저 높은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를 어른이 되어서야 다시 마주한 이 무신론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냥 어디든 앉아서 빨리


기도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이런 게 신앙심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벅차올랐던 것엔 틀림이 없었다. 저 높은 어딘가에서 나를 내려다볼, 아직 존재의 확신도 없는 이에게 뭐라도 빌고 부탁하고 싶었다. 교과서에나 봤던 고딕양식이 왜 그렇게 높은 천장을 고집했는지 알 것 같았다.



높이감이 주는 판타지는 뵌 적 없는 신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저런 곳에 있다면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막연한 신뢰감을 느끼게 했다.








꼭대기보다도 더 높은 곳은 새하얀 자연광이 비추고 있었다. 떠받치고 있는 8 각형의 구조물과 신비로운 비밀 공간 같은 그곳의 대비는 명확했고, 마치 하늘의 어떤 계시라도 받은 듯 영롱해 보였다. 들고 있는 고개를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냥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좋은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다. 신과 종교를 믿지 않았고, 내 평생 교회를 포함한 종교 시설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 맹세했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 이곳에 들어와 이 공간의 감성과 목적을 온몸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좋은 디자인은

별다른 말이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나는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들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무제>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감상하는 자에게 사유의 틈을 주는, 그 어떠한 단서 제공도 생략한 단출한 네이밍말이다. 작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뜻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작품 해석의 기회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열린 결말의 수호자였던 걸까.


어느 쪽이든 침묵엔 자유가 있었다


굳이 성경을 들지 않아도 괜찮고

목청껏 노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 어떤 현대 건축가가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종교가 없는 이도 자연스럽게 두 손 모으게 만드는 공간을, 어떠한 설명 없이도 그저 영광스러운 공간을. 나는 한동안 이곳에서 느꼈던 육체적 정신적 감각을 쉽게 떨쳐내기 어려웠다.   


공간에서 경험한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의식 없는 영혼의 태움은 나에 대한 의심으로 돌아왔고 그 진동은 쉽게 중심을 잃고 쓰러지게 만들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선명함을 쫓아 추구하는 바를 담담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나의 첫 기도는 무한한 자유와 영광이었으며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느꼈던 종교의 힘은

명료하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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