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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May 13. 2024

얘는 나가야 잘 살아

스물여덟, 독립하기까지

정기적으로 가족들의 사주팔자를 보러 다녔던 엄마가 소신이 뚜렷했던 큰 아들과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지중지 막내딸 차례에서 열이면 열 들었던 말은 “얘 좀 빨리 내보내”였다.


용하다는 점쟁이들은 그 내보내는 장소까지 “이왕이면 해외로”라며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딸 걱정이 가득한 아줌마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마도 엄마는 그동안 얘를 미국을 보내 유럽을 보내하며 갈팡질팡 마음의 준비를 속으로 소란스럽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네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들으면 별 관심 없던 남자애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나 역시 “우리 딸은 나가도 잘 산다 하더라” 하고 큰돈 주고받아온 남의 말을 수년간 곱씹으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확신을 가지고 적당히 나갈 타이밍을 노려왔던 것 같다.


사실 집을 나갈 명분은 예전에도 충분했다. 왕복 2시간의 미술입시학원 통학, 왕복  3시간의 대학 통학, 다시 왕복 2시간의 직장 출퇴근. 다 어떻게 견뎌 냈나 싶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젊음으로 패기로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어찌어찌 (사실 별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인 레벨에서 맞닥뜨렸던 지옥철은 생각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의 유용한 에너지를 상당 부분 갉아먹었고, 이제는 20대 초반의 열정보다는 최고의 효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이임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내겐 문 앞까지 꽉 들어찬 인파 속을 내 발로 직접 기어 들어가 온몸을 옥죄는 그 잔인한 시간을 단 1분이라도 줄이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스물여덟쯤 되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는 말이 피할 수 없으면서 즐기지도 못하겠는 일까지 포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퍽 불편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피할 수 있는지 없는지, 즐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분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아닐까.


그렇게 인생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는 정도의 철이 들었을 때, 직장에서 가까운 월세방 한 칸 정도 내 돈으로 구할 수 있었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해봤다.


“엄마, 나 독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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