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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Feb 16. 2022

마이애미의 무지갯빛 하루

Colors of Miami

두꺼운 커튼 사이로 오렌지색 빛줄기가 한 가닥 새어 들어왔다. 어느새 해가 뜬 모양이다. 어제 오후에 마이애미에 도착해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맞이하는 첫 아침이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발코니로 향했다. 호텔이 바닷가에 위치한 데다 창이 동쪽을 향해 있어 방에서 아침해를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막 떠오른 태양은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하루의 시작을 요란하게 알리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어김없이 떠오른 태양이 원망스러웠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는 마이애미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채비를 시작했다.


§ 호텔 발코니에서 본 동틀 무렵의 마이애미 해변. 하늘이 구름에 뒤덮여 있기는 해도 태양의 아침 인사는 여전히 강렬하다. 굿 모닝 마이애미.


숙소는 마이애미 비치보다 야간 남쪽인 코코넛 그로브에 위치해 있어 우리는 우버를 타고 마이애미 비치로 향했다. 에메랄드처럼 투명하고 푸르른 남쪽의 바다는 해변을 향해 부드럽게 밀려왔다가 물러가곤 했다. 날씨는 따듯한데 바닷물이 나에게는 아직 차가워서 우리는 발만 담그고 놀았다. 기분을 내려고 바른 민트색 페디큐어가 바다의 색과 잘 어울렸다. 해변에 앉아 젖은 발을 말리며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햇볕이 따가워 두 팔이 따끔거렸는데 비키니만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많고, 나는 물이 차가워서 발만 담갔으면서도 파도가 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는데 웃통 벗고 수영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마다 각각의 온도가 이렇게나 다르다.


§ 전형적인 남쪽 바다의 색을 한 마이애미 비치. 해변에서부터 멀어질수록 미묘하게 색이 바뀌면서 조금씩 어지는 푸른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몸과 달리 내 마음은 이미 파도를 타고 머나먼 바닷속 어딘가를 헤엄치고 있었다.


한참 해변에 앉아 있다가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리고 싶어 근처의 시티바이크(Citibike) 스테이션을 찾아갔다. 마이애미는 시내 곳곳에 공유 자전거인 시티바이크 스테이션이 있어서 편하게 이용하다가 반납할 수 있다. 구글 지도에 'citibike near me'로 검색하면 근처 스테이션을 찾을 수 있고 가격은 한 시간에 7달러, 하루 24달러 정도. 우리는 일단  시간을 빌려 마이애미 비치 아래부터 해안가를 따라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페달을 힘껏 밟자 자전거에 점차 속도가 붙었다. 시원한 바람을 흠뻑 맞으며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니 영화 <ET>에 나오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바람이 아무리 시원해도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는 당할 길이 없는지 두 팔금세 새빨갛게 익어 버렸다. 우리는 잠시 어딘가로 피신해 더위를 식히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 구름 한 점 없는 한낮의 마이애미는 정말 예쁘지만 말도 못 하게 덥다. 겨울에도 이렇게 더운데 여름에는 어떻게 살까 싶다. 물론 그래도 살게만 해준다면 두말없이 눌러앉겠지만.


그래서 태양을 피해 달아난 곳은 보태니컬 가든. 이곳은 크지는 않지만 입장료도 없고 나무 그늘이 우거져 시원한 데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 딱 좋다. 우리는 적당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 식사와 함께 상그리아를 한 잔 마신 남편은 잠이 솔솔 오는지 내 무릎을 베고 벤치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졸지에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된 나는 초록색 잎사귀들을 바라보며 쉬기도 하고, 그동안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보태니컬 가든의 나무들은 대체로 열대수종이지만 이렇게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 놓은 곳도 있다. 연못에는 여러 마리의 잉어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모두가 여유로워지는 마법의 공간.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던 열기도 한 풀 꺾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피신처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저녁 무렵의 바다에서는 연보라색부터 분홍색까지 모든 파스텔 색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 이 짧은 순간의 바다를 붙잡고 싶어 페달을 밟는 다리에 더 힘을 주었다. 마치 언제까지고 노을이 보고 싶어 의자를 끊임없이 움직이며 지는 해를 따라갔던 어린 왕자처럼 자전거를 달리고 달려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 아직 해변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마이애미의 저녁 바다에는 따사로운 고요함이 남아있다. 물결처럼 잔잔한 평온의 시간이다.


이윽고 어둠이 찾아오자 마이애미 해변은 또다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이 휴양지에 밤은 없으니 마음껏 즐기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도 전혀 잦아들 기색이 없다. 붉게 시작된 하루는 무지갯빛 시간을 거쳐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지만, 마이애미의 활기찬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얼마 남지 않은 하루를 여한 없이 즐기고 있었고, 나는 바닷가의 바에 앉아 달콤한 칵테일을 홀짝이며 마이애미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이곳에는 언제까지고 칠흑 같은 어둠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검게 뒤덮어 버리기에 이곳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어둠이 한 발짝 슬쩍 양보라도 한 모양이다. 마이애미의 밤은 한없이 푸르게 깊어가고, 나의 하루는 달콤하게 저물어 간다.


§ 건물들마다 환하게 밝힌 조명이 수면에 비쳐 아른거린다. 내 눈동자에도 마이애미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오래도록 아른거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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