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엄띠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여전한 양자물리의 다양할 해석
띠엄띠엄의 세계를 전자라는 친구와 함께 살펴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 돌맹이나 지구, 태양 같은 큰 세계에서 우리가 띠엄띠엄한 경험을 하지는 않습니다. 전자 정도의 작은 친구들에서 나타나는 일인 거죠. 그래서 19세기까지는 잘 모르다가, 과학이 발전하면서 원자 안까지 들여다보다보니 전자같은 친구들의 이상한 세계가 보인거에요. 그 세계는 뉴턴의 후예들이 생각했던 F=ma에 의해 완전히 예측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알수도 없고, 더구나 알려고해도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으니까요. 거기에 삶과 죽음 같은 정반대의 것들이 같이할 수 있고, 같이 놀던 한국의 철수가 눈을 맞으니 미국의 영희가 눈에 멍이 드는 것 같은 일도 벌어지죠.
이런 희한한 상식을 넘어선 일들이 신기하게 펼쳐졌던, 전자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완결된 것 아니냐구요? 저는 그렇게 칼로 자르듯 딱 끝나지 않는 이야기여서 오히려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아인슈타인의 EPR 역설의 이야기조차 완전한 승자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많은 해석들이 등장합니다. 코펜하겐의 정통적 해석은 물론이고, 여전히 결정론적인 숨은 변수 이론도 살아 있습니다. 여기에 앙상블 해석, 다세계 해석 등이 여전하구요. (나무위키의 글을 아래에 링크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이 시리즈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어 여기서는 다루지 않습니다만, 그만큼 띠엄띠엄의 양자물리는 아직도 신비롭습니다. 이성과 논리로 모두 지배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당연하게 큰 세계는 뉴턴, 작은 세계는 띠엄띠엄 이라고 했습니다만, 이것도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환원주의를 지향합니다. 가장 작은 것을 모두 알면, 그것으로부터 큰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기체를 알고 싶어서 분자를, 원자를 공부하다가, 원자핵을, 양성자와 중성자를, 쿼크를 공부하는 것이죠. 가장 작은 것의 깨달음이 가장 근본적이라는 믿음. 그런데 큰 세계와 작은 세계가 다른 세계관을 가진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이 부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돌맹이와 전자의 중간 어딘가의 이어지는 세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달라서 이어 붙이기도 힘드니까요. 여기에 위에서 보듯 해석조차 여전히 분분하니, 아직도 잇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영영 붙지 않는 세계일까요, 지구의 큰 세계와 전자의 작은 세계는.
요즘은 거시적인 양자상태도 꽤 연구됩니다. 빛의 상태를 통하기도 하고, 초전도체를 통하기도 하죠. 둘 다 너무도 양자적인 것들이라, 미터 단위의 크기에서도 구현되나 봅니다. 이런 이야기들도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유행처럼 나타나는 양자 암호와 양자 컴퓨터도 마찬가지겠죠. 우리가 쓰는 컴퓨터를 띠엄띠엄의 양자물리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니까요. 그냥 작은 세계의 이야기였던 띠엄띠엄의 양자물리가, 이제 큰 세계까지 이어지는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사람의 생각이 뉴런을 통한다면, 뉴런에서의 신호 전달 체계가 띠엄띠엄의 양자물리에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시냅스 전달 과정에서, 뉴런도 너무 작으니 띠엄띠엄의 세계에서 일이 벌어지는 것이겠죠. 이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사람의 생각을 구성하니,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도 이어지겠죠?
20세기 중반을 넘어오면서 유용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본질에 대한 해석은 조금 뒤로 물러나게 된 듯도 합니다. 신기한 것은 그 끝에 서 있는 21세기의 지금, 다시 유용함의 시작에서 띠엄띠엄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 양자물리를 공부한 저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100년전 사람들의 고리타분한 학문적 논쟁을 넘어, 새로운 세상의 시작에선 신비한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 입니다. ^^
<양자 물리 해석 관련 나무 위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