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네 고양이는 살면서 죽었다네?

양자물리의 확률 상태에 대한 패러독스

by 강윤식

'전자,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이것으로 1920년대까지 참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원자 안에서 귀신처럼 뿅~ 하고 띠엄띠엄 순간이동을 하는가? 아니다, 파동이어서 연속적으로 스윽~ 하고 변한다. 그러면 이중 슬릿 뒤 스크린에 찍힐 때 점이던데 확률이냐? 그리고, 혹시 입자야? 파동이야? 눈치 채셨겠지만, 질문이 띠엄띠엄의 양자물리 편 이야기입니다. 사실 뉴턴의 후예는 딱 한마디, 혹시 파동... 이라고 했을 뿐이죠. 실험을 바탕으로 띠엄띠엄 편이 이야기하니까 코너에 자꾸 몰린거죠. 그래서 이제 뉴턴의 후예는 전략을 바꿉니다. 우리도 제논처럼 역설로 공격이닷!


역설 공격 이야기 전에, 그 띠엄띠엄 들이 모여서 한 편을 이룹니다. 사람들이 코펜하겐에 주로 모였는지, 이름에 코펜하겐이 붙네요. 코펜하겐 해석, 코팬하겐 학파, 뭐 이렇게요. 여기서는 코펜하겐파 라고 할까요? 후후. 닐스 보어가 코팬하겐에 세운 연구소에 자주들 모여서 같이 이것 저것을 했나봐요. 보어는 띠엄띠엄 순간이동을 주장했던 분이죠? 이 분을 중심으로 뭉친 것이죠.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못보고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는 하이젠베르크, 파동은 확률이다 라는 막스 보른도 여기에 모입니다. 이들이 여기서 모여서 그 유명한 코펜하겐 해석도 이야기하구요. (코펜하겐 해석은 나중에 정리해서 이야기할께요.)


자, 이 코펜하겐파와 뉴턴의 후예들은 소소히 붙고 있었습니다. 학회 같은 곳에서 아인슈타인이 공격하면 보어가 방어하고 하는 식이었죠. 뭐 아주 강력한 것은 아니고 잽~ 정도 날리고 받고 했다고 할까요. 조금 지나서 드디어 큰 크로스 펀치가 날라갑니다! 그 주인공은 또 다시 나타난 슈뢰딩거!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좋아했을까요? 이 반격에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고양이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 앗 너무 철학적인 이야기냐구요? 흐흐, 그런 종교적인 이야기는 아니구요, 원래 슈뢰딩거의 설명을 조금만 바꿔서 해 볼께요. 이중 슬릿 하던 이야기에 맞춰서요.


자~ 다시 이중 슬릿입니다. 전자를 엄청 많이 이중 슬릿을 통과시켜 스크린에 보내면 간섭 무늬가 생기죠? 근데 정말 약하게 보내면? 스크린에 점 하나 찍힙니다. 그렇다는 건 전자 하나가 날라왔다는 거죠? 막스 보른의 확률 해석에 따르면, 이중 슬릿의 두 구멍을 파동처럼 동시에 통과하는데, 그것은 각 구멍을 반반 통과할 확률이라는 것이었죠. 두 구멍을 다 지나야 간섭을 하니까요. 그렇다면 전자는 오른쪽 구멍도, 완쪽 구멍도 동시에 같이 통과한다는 것일까요? 확인하면 둘 중 하나겠지만, 확인 전까지는 둘 다 라는 거잖아요. 애초에 전자라는 입자에 확률 같은 걸 적용시키니까 생기는 문제인데요.


이것을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슈뢰딩거가 장치를 꾸밉니다. 밖에서 볼 수 없는 상자에 고양이를 넣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독약 장치를 넣습니다.( 제 설명이 아네요. 슈뢰딩거가.. 조금 잔인한가요...) 그런데 장치를 설치해서, 아까 이중 슬릿과 연결합니다. 슬릿의 구멍에 현미경을 달고, 사람이 보지는 않습니다. 단지, 오른쪽 구멍으로 전자가 통과하면 독약병을 깹니다. 왼쪽 구멍으로 전자가 통과하면 독약병을 안깹니다. 현미경은 신호만 독약병쪽에 주지, 사람은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자, 이러면 고양이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이중 슬릿을 통과하던 전자는 오른쪽 구멍과 왼쪽 구멍을 반반의 확률로 통과합니다. 그래야 간섭 무늬를 만들죠. 그러면 오른쪽으로 가서 고양이가 죽었을 가능성 반, 왼쪽으로 가서 고양이가 살았을 가능성 반 인가요? 헉, 고양이는 죽음과 동시에 살아있나요? 이런 상태가 가능한가요?


이렇게 패러독스를 만들어서 역공을 펼칩니다. 실험을 통한 정공법이 먹히지 않으니까요. 그건 오히려 코펜하겐파가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아이러니하죠? 제논의 패러독스는 무시하고 완전하게 운동을 기술하던 뉴턴의 후예였는데, 이제 그런 패러독스로 공격을 하다니 ... 여하튼 이건 센세이셔널 합니다. 다른 문제야 그러려니 할 수 있어도, 삶과 죽음의 문제잖아요. 짠데 동시에 달다, 밝은데 어둡다, 하나인데 둘이다, 뭐 이런거야 해석의 여지가 있다치는데, 살아 있음과 동시에 죽었음이 가능한가요?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거냐는 것이죠. 극적으로 보이기에 이만한 것이 없는 거겠죠.


사실 하나의 입자인 전자가 오른쪽 구멍과 왼쪽 구멍에 동시에 있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상태입니다. 왼쪽 구멍에서 보면, 있음과 동시에 없음이잖아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가진 상태라니, 이러면 논리가 무너지겠죠. 그것을 삶과 죽음으로 보다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던 거죠.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것이라... 앗, 다시 말씀드리지만, 철학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리 이야기입니다. 그럼 진짜 고양이는 어떻게 된다는 걸까요? 삶과 죽음이 함께인 상황을 볼 수 있나요? 애석(?)하게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 죽거나 살거나 하나의 상황이 되죠. 확률이라는게 보기 전까지가 그렇다는 것이지, 본 후에는 하나니까요. 그러면 뭐가 문제냐구요? 상자를 열기 전 까지는 여하튼 간섭을 했을 거잖아요. 상자를 연 후에나 간섭이 사라지죠. 그럼 간섭을 하고 있을 때에는 뭔 상태냐구요! 확인하면 된다구요? 그러면 간섭도 사라지고 둘 중 하나가 되는데?


이야기를 할 수록 꼬여만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코펜하겐파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너무 어렵잖아요. 이런 삶과 죽음까지 난무하는 이야기라니. 그런데 그 대응이 더 황당합니다. 그 대답은,


'어, 그래.'


헉, 진짜냐구요? 네. 진짜입니다. 지금까지 한 말이 다 맞다는 겁니다. '고양이는 확인하기 전까지 삶과 죽음의 중첩상태이고, 확인하면 하나로 바뀐다. 입자는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는 상태에 있다.' 이런 것을 그냥 쿨~ 하게 받아들인거죠. 실험에서 나오면 그냥 쿨 하게 그렇게~ 아, 물론 실험은 이중 슬릿에 고양이로는 안했구요, 다르게 세팅해서 합니다. 여하튼 뭐 세상이 그렇게 형식논리적으로 딱딱 들어맞을 필요도 이유도 없지 않냐는, 마치 도인 같은 태도인가요? 런데,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 중 중요한 부분라는 겁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양자물리 교과서의 정설은 바로 이 코펜하겐 해석입니다. 그래서 많은 물리학도들이 대학교 3학년 때 방황합니다. 흐흐. 저도 그랬구요. 슈뢰딩거의 놀라운 반격은 이렇게 코펜하겐파의 쿨~ 한 대응으로 싱겁게 끝납니다. 하지만, 학문의 깊이는 더 깊게 만들어주었죠. 그리고 이 중첩 상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릴 양자 얽힘과 함께 지금의 양자 컴퓨터와 양자 암호의 근간이 되기도 합니다. 뉴턴의 후예들에 의해 더더욱 풍성해지는 띠엄띠엄의 세계,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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