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5월의 꿈을 꾸는 아이야.

- <연의 편지>를 보고 달려와서 쓴 글 -

by 물오름달
⚠️ 작품 줄거리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실 때 참고해 주세요.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걷는 밤이었다. 얼마 만에 가보는 영화관인지 모르겠다. 개봉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연의 편지>. 이런저런 평가가 들려오기 전에 보고 싶어서 일부러 저녁 약속도 미뤘다.


평소라면 잘 준비를 할 시간에 옷을 입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니 오랜만에 내가 어렴풋이 미소 짓고 있었다.


밤의 영화관은 한산했다. 매표소에서도 매점에서도 줄을 서지 않아도 되니 편안했다. 8천 원 하는 스몰 세트에 천 원을 추가해 달콤 팝콘으로 맛을 변경했다. 몇 개 주워 먹다 보니 상영관이 열렸다.


<연의 편지>는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보물 같은 작품이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18년도의 여름. 뜨거웠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랑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정확한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분명 마음을 울릴 만큼 따뜻하고 반짝였다는 건 기억이 났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이소리는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외면하지 못하고 감싸주다가 폭력의 표적이 된다. 소리는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원래 살았던 터전으로 돌아와 전학을 오게 된다. 하지만 한 번 상처 입은 마음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리는 변변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겉돌다가, 쉬는 시간에 서랍 밑에 붙어 있는 의문의 편지를 발견한다. 누가 썼을지 모를 편지에는 학교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쓰여 있었다. 소리는 그 편지 한 장에 마음을 기댔다.


다음 편지도 찾아보라는 말에 소리는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왠지 편지를 쓴 주인공에 대해 자세히 아는 듯한 은발의 남자애를 만나게 된다.


다정한 편지를 남긴 이의 이름은 '정호연'이었다. 남자애의 말을 들어보니, 호연은 여름 방학 사이에 감쪽 같이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이민을 갔다더라는 무성한 소문만이 그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한 순간에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 동순이는, 무조건적으로 호연을 감싸며 그의 편지를 찾아 애타게 헤매는 소리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호연과 쌓은 추억의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순이는, 자꾸만 의외의 곳에서 소리를 마주친다. 여러 일을 겪으며 한 순간 가까워진 두 사람은 마음을 터놓기 시작한다.


그렇게 호연이 남긴 나머지 편지들을 함께 찾아나가는 두 사람. 그 사이,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도 피어난다. 편지 한 장으로 엮어진 그들의 인연. 과연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지독한 성장기를 겪는 아이들의 눈부신 이야기가 선물처럼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나와 비슷해서 더 몰입 됐던 것 같다. 다 본 후에도 한참을 일어서지 못하고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결처럼 번지는 여운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글을 쓸 때 어쩌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바로 제목이다. 그래서 내가 재미있게 본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연의 편지'일지가 궁금했다. 내가 고심해서 찾은 이유는 총 네 가지인데, 작가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가 있다면 꼭 찾아보고 싶다.


'연의 편지.' 편지를 쓴 주인공의 이름, 호연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유 하나.


아이들의 인연이 끊기지 않고 이어질 거라는 염원을 담은 이유 .


편지가 있었던 모든 장소는, 호연과 동순. 그리고 호연과 소리가 함께했던 자리였으니, '한 통의 문서에 두 사람 이상이 연달아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다'는 뜻을 가진 한자어 연인(連印)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유 .


마지막으로 동순과 소리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된다는 이유 .


정확히 어떤 뜻이 메인일지는 모르겠지만 난 모든 이유에서 이 제목을 애정한다. 또한 부디 오래오래 작품 속 주인공들이 행복하길 응원할 것이다.


영화를 보는데 슬프지 않은 장면에서도 눈물이 났다. 진흙탕 같은 현실이어도 좋으니 사람 사이에 섞이고 싶다는 바람이 애써 미뤄뒀던 그리움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져 괜스레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나는 지킬 수 있을까.' 영화가 결말을 향해 달려갈수록 바보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병원 생활을 해야 했던 소리와 호연. 그리고 괴롭히는 상대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자신을 망쳐야 했던 동순. 아이들은 저마다의 싸움을 치열하게 해냈다. 약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비겁해지는 법은 없었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늘 생각했던 건, 왜 착한 사람들이 더 아프고 괴로울까 하는 것이었다. 그 불공평함에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다가오는 폭풍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의 편지' 안에서만큼은 상처 많은 아이들이 서로를 지키고 위로했다. 서툰 발돋움은 항상 옳은 쪽을 향해 있었다. 그들은 함께라는 사실 하나로,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겨우내 버티고 있던 풀잎들이 기어코 언 땅을 부수고 나와, 자신들만의 팡파르를 울리며 여과 없이 행복하길 바란다. 결국 버티길 잘했다고, 힘들어도 살아내길 잘했다고. 스스로 장하다고 웃으며 위로할 수 있는 계절이 어서 찾아왔으면 좋겠다.



영화 속 OST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좋았던 장면과 대사가 너무 많아서 웹툰도 다시 정주행 했다.


예전 작품이지만 최신 댓글들이 많았다. 손 안의 작은 세상에 온 마음을 맡기니 나도 모르는 평온이 찾아왔다.


완결 후기에는 독자들의 사랑에 힘입어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논의 중에 있다는 소식이 쓰여 있었다. 그 작품이 무려 7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되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 다른 미디어로 변환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길고 어려운지 새삼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대단한 결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이 글을 썼다.


만약 당신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채로 이걸 읽고 있다면, 자신 있게 추천해주고 싶다.

영상미와 스토리, 캐릭터와 OST가 모두 훌륭하니 보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동순이와 소리가 연못 밑에서 편지를 찾던 순간이다.


서먹하던 둘의 사이가 부쩍 가까워진 계기가 된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소란한 떨림을 불러일으켰다. 찬란하고 순수한 계절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것 같다. 좋았던 대사는 많았지만 그중 딱 두 가지만 옮겨본다.


사실 어떻게 찾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애의 특이한 능력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날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맨 것이

내겐 훨씬 더 놀라웠기 때문에.


기적을 만들려면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

그래서 어느샌가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

아픈 사람을 치료하거나
하늘을 날게 된 것도 마찬가지야.

그게 당연하고 시시하게 여겨지는 순간

기적이나 마법이 아니게 되는 거래.


순수함이 남아 있던, 정이 남아 있던 시절이 조금은 그립다.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손으로 한 자 한 자 열심히 적어 옮기던 그때. 편리함을 위해 우리가 버린 것이 다정함은 아니길 바란다.


제목에도 있는 '아이'라는 단어. 아이를 떠올리면 왠지 미소를 지어야 할 것 같다. 소중하고 예쁘게만 다뤄줘야 할 것 같다.


나에게도 있다. 시간의 흐름에 못 이겨 어른이 되어버린 마음속의 아이가.


당장 오늘을, 다른 인생처럼 바꿔주는 마법은 부릴 수가 없어서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본다. 그거 하나는 나한테 해주고 싶어서.


이제야 깨달은 바가 있다. 몸이 아플수록 사람이 더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 어차피 흘러갈 오늘이라면 단단한 마음으로 버텨내는 게 훨씬 이득이다.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맑은 얼굴로 당당히 이겨내는 거다. 어떤 그늘도 피어나는 꽃을 막을 수 없듯이 지금보다 더 큰 꿈을 꾸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난다.


• 원작이 궁금하다면 : [네이버웹툰] 연의 편지.

영화는 극장에서 만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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