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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진 Nov 04. 2021

대통령 할아버지

2021년 11월 4일

서울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뒷동네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망루를 쌓기 전의 일이다. 그 시절 초등학교 앞에는 네댓 개의 문방구가 늘어서 있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군것질거리와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굶주린 아이들은 외상값을 달아가며 그 불량식품으로 허기를 달랬다. 손버릇이 나쁜 아이는 장난감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잡혀 뺨을 맞기도 했다.


학교 종이 울릴 때쯤 주변에 나타나는 노인이 있었다.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이면 꼭 맞춰 그 자리에 나타났다. 까무잡잡하고 거친 피부에 깊게 파인 주름. 온통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  우리는 노인을 ‘대통령 할아버지’라 불렀다. 그가 대통령을 닮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유별난 인사법 때문이었다. 길을 지나다니는 아이들을 ‘대통령’이라 부르며 악수를 청했기 때문이다. 이웃들에게도 그는 제법 유명한 노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노인을 요새는 찾을 수가 없다. 자녀들의 등쌀에 떠밀려 대부분 요양원에 가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신고가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도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추기도 전인 아이들은 그를 피했다. 노인의 손이 불결하다며, 또는 무섭다는 이유로 악수를 거부했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사람이다’라는 황당한 소문도 돌았다. 영문을 몰랐던 나도 몇 번인가 그를 보면 친구들과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기도 했다. 꽤나 무례한 짓이었다.


그래도 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나타났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문방구 앞에 사는 게 분명했다. 언젠가 그와 혼자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처음엔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겁을 먹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때처럼 웃는 얼굴로 악수를 건넸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그 손이 꺼림칙하지 않았다. 지난번의 무례함에 대한 사과였을까, 아니면 쇄약 한 노인에 대한 동정이었을까. 나는 내 담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내 손을 굳게 마주 잡으며 해맑게 “대통령!”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인은 악수를 하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건넸다. “나중에 꼭 대통령 같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꿈이 뭐니? 대통령 돼야지!” 그는 그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아이들을 아끼는 어르신일 뿐이었다. 그 후 그의 억울한 누명을 밝히려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몇 번이고 그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매번 그는 우리를 “대통령!”이라고 부르면서 손을 먼저 건넸고, 몇 년이 지나도 늘 똑같은 덕담을 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쯤부터 거리에서 그가 보이지 않았다. 소식이 무척 궁금했던 건 아니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기에 금방 잊어버리고 지냈다. 하지만 그 노인이 내 어린 시절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줬다는 게 감사했다.


누구나 때 묻지 않은 그런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건 부끄러움 때문이라 생각했다. 너무 커버린 자신이 한때 바라던 사람이 되지 못한 죄책감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가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분명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찼을 때가 있었다. 그건 자기 최면에 가깝게 마음을 다그치기면서 잡는 감정이었다. 어렵게 꿈이라 부르는 일을 이루고 나서 허무한 감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갖고 어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또다시 성급한 선택을 했던 게 아닐까 고민이 들 때가 있다. 터무니없는 대답을 하는 어린아이들보다 더 성의 없는 태도로 말이다.


지금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달마다 모아서 연다. 선생님들은 마이크를 쥐어주고 카메라 앞에서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질문에 쭈뼛거리며 아무 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경찰관이 될 거예요’라고 대답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님이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본 건 아니지만, 기대감이나 실망감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꿈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이루는 아이들이 더 손에 꼽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이가 들어도 그런 성급한 결정을 자주 내렸다. 대학은 점수에 맞춰서 전공을 정하고, 졸업을 할 무렵에야 회사의 선택에 맡겨 직업을 정한다. 누군가의 섣부른 고백을 받아 들고 상처 주기도 한다. 자주 보는 사이라고 손쉽게 마음을 열었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많다. 그러고 나면 남아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음을 알고 괴로워하는 일을 반복했다. 문득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 대통령 같이 훌륭한 사람이 돼 달라고 바라던 노인이 자꾸 떠올랐다. 그럴 때면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자신의 일조차 남의 일처럼 함부로 대한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못했다.


나이가 늘어날수록 한결같았던 노인의 주문을 떠오른다. 그가 왜 굳이 대통령을 꼽았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더 자랑스러운 위인이 되길 바라는, 아이보다 곱절은 살아온 어르신의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굳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그만큼 큰 가능성을 열고 살아주길 바랐던 게 아닐까. 어떤 선택은 우리를 예상할 수 없이 멋진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물론 지금까지 운에 맡겨온 삶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겠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우리가 대통령까지 꿈꿀 수 있는 가능성과, 빛나는 잠재력이 있는 아이들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싶다. 아무렇게나 살면서 인생의 황혼기를 맞지 않도록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노인은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볼품없는 동네에서 희망이란 단어에 가장 많이 악수를 한 인물이 되겠지. 어쩌면 그의 손을 거친 사람들 중에서 진짜로 대통령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지친 어른들에게 언제라도 그 시절의 당신을 떠올리게 해주는 추억을 선사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노인의 소일거리치곤 제법 멋지게 보였다. 이제는 기억의 저편에서 늘 거기 서있을 그의 응원에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불쑥 자라 버린 거울 속 당신을 보며 실망하지 않도록 모든 선택의 순간을 놓치지 말자. 우리는 너무나 멋지게, 훌륭한 삶을 살아가야지. 앞으로도 그렇게. 비록 대통령이 되지는 못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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