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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 Jul 22. 2022

선물

누구를 위함인가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도록 휴대폰이 다 알려주는 시대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지인들의 생일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는 고마운 세상이다.


오늘은 지인의 생일이다.

요즘 유행하는 선물은 뭘까 살펴본다.

코로나의 재유행으로 다소 위축된 분위기로 돌아가긴 하지만,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띄고, 야외활동도 많아지고 있어서일까, 여성을 위한 추천 선물에는 화장품이 단연 인기 제품인 듯하다.

지난번 친구의 생일일 때 나 역시 화사한 색조화장품을 골라 보냈었다.

그 친구는 여고 선생님이라 그런지, 학교에 꽤나 꾸미고 출근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내 선물이 집 화장대 서랍 구석에서 굴러다니지는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 집 꼬맹이의 친구 엄마인 지인은, 등원 길에 마주칠 일이 가장 많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자식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정신이 없다. 신발을 갈아 신고, 문 안으로 들어가며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오른쪽 복도 길까지 들어서서 등에 맨 가방이 보이지 않게 돼서야 서로 인사를 나눌 여유가 생긴다.

나도 그렇지만, 지인도 그렇게 꾸미는 스타일은 아닌 듯 보여-적어도 등원 길만큼은 그래 보인다-인기 많은 각인 화장품 같은 건 그리 반갑진 않을 듯하다.


등원시키러 오는 엄마가 맞나 싶을 만큼 화려하게 멋을 부리고 오는 엄마들도 간간이 눈에 띄기는 한다. 어떤 사람은 직장인 같고, 어떤 사람은 주부 같은데, 직업이 뭐가 되었든, 늘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거나, 아이가 혼자 등원 준비를 할 수 있거나 이지 않을까.





바디 제품이나 기초 화장 제품은 사람마다 호불호도 있고, 피부 상태도 다르니 안 되겠고,

그렇다고 생활용품을 주기엔 너무 선물 같지 않고,

먹을 건 내가 받아보았을 때, 그렇게까지 반갑진 않았었고-물론 누가 보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오 이건 좀 선물 같겠다' 하는 건 그 금액대가, 주는 나도 받는 지인도 부담스러울 것 같은 것들이고.

고르고 고른 게,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목욕용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내가 즐겨 쓰는 건데, 향도 너무 좋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이 다 있어 우리 집 꼬맹이랑 놀면서 목욕하기에 딱 좋은, 그래서 시간도 잘 가고, 그 녀석도 나도 아주 좋아하는 제품이다.

선물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 이게 '생일 선물'로 괜찮을까 고민했지만,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는 것 같았다.


선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좋겠지만-내 돈 주고 사기는 좀 아까운가?-그렇지만 너무 갖고 싶은,

그런 사치품 느낌이 좀 나는 것이 딱 좋다고 늘 생각했었다.

오늘 고른 이 선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일선물'이라는 '목적 달성' 면에서 잘 선택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신박템이라며 아이가 너무 좋아할 것 같다는 선물에 대한 답장 문자가 온다.

신박템까진 좋았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할 것 같다는 문자는 역시나 나의 마음에 좀 걸린다.

'자식이 좋으면 엄마도 좋겠지'라고 중얼거려본다.






우리 집 꼬맹이는 가끔 길에 있는 꽃을 꺾어 엄마에게 건네는 로맨틱한 녀석이다.

유치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올 때면,

"꼬맹이 유치원에서 뭐 만들었구나~ 뭐 만든 거야? 너무 이쁘다~"

"이거 엄마 주려고 만든 거야"

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들어보면, 말하는 중 반은 진짜 나를 주려고 만든 것 같고, 나머지 반은 그냥 나를 보고 즉석에서 하는 말 같다.

아무렴 어떠리,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녀석이 이렇게 알고 있는데!






꼬맹이가 6살이니, 우리가 지지고 볶으며 5년을 넘게 살고 있다.

이 녀석이 지금 보다  어릴 때는, 나를 위한 것보다는 이 아이를 위한 것들만 좋았었던  같다.

워낙 모든 나의 일상이 육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남편이 꽃을 사 와도, 말로는 고맙다 하지만, 저 깊은 마음에선 '뭐 이런 걸...'


아이가 많이 크고 나니 내 것도 사고 싶고, 꽃도 다시 눈에 들어오더라.

공방에서 아이랑 같이 만든 화병에, 퇴근길에 사 온 꽃을 꽂아 놓기도 하고,

사치품 선물을 받으면 예전만큼 기분이 좋다.


엄마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는 여성들의 삶은 '아이와 함께하는 인생'과 '그 전의 인생'을 혼자 비교해 보기 마련이다.  

꽃은 나에게 어찌 보면 상징적 존재이다.


나만을 위한 삶, 아이만을 위한 삶, 그리고 아이와 내가 함께 어우러진 삶.

굳이 구분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나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고 있다는 상징.


벅차도록 행복한 변화이지만,

아이가 나에게 해주는 '엄마를 위한거야'라는 사랑스러운 말들처럼, '딱 한 사람만을 위한' 무언가를 생각해 낸다는게, 이제는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된건가.


선물 하나 보내 놓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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