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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06. 2022

제주에서 미술관 2.

2. 왈종미술관

아침에 일어나니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창가로 햇살 가득 모처 화창다. 이런 날에는 꼭 먼 곳으로 가고 싶어 진다. 오늘은 서귀포에 위치한 왈종 미술관에 다녀와야겠다.



시부모님 집 식탁에 걸려있는 그림이 한 점 걸려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그림이라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내가 며느리가 되기 전부터 그림은 그 자리에 있었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꽃과 나무, 새로 둘러싸인 집과 그곳에 사는 부부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마치 가족이 원하고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제목, 화가도 모르고 있었다(그림을 구매하신 어머님만 알고 계신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그림을 그린 화백의 미술관이 제주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 그림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을 다녀왔다. 서귀포에 있는 왈종미술관이다. 사실 시댁에 있는 그 그림을 보고 왈종미술관을 안 것이 아니라 왈종미술관에 다녀와서 그 그림인 줄 알았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햇빛이 가득하다 못해 눈이 부시는 서귀포의 바닷가 앞, 그곳에 왈종미술관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간혹 '양지바른 곳이네?'라고 말하는 곳이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산소에 갔던 날, 겨울이었는데 그곳은 너무도 따뜻했다. 바로 여기가 양지바른 곳이구나! 내가 왈종미술관을 다녀온 것도 겨울이었는데, 분명 찬바람이 부는데 햇살이 너무도 따뜻해서 벌써 봄이 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이런 양지바른 곳에서 산다면 매일 밝은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희망적인 글을 쓸 수 있으려나?




서귀포, 왈종미술관




조선 백자를 닮은 왈종 미술관. 이곳은 본래 이왈종 화백이 살던 집이었는데 그것을 헐고 미술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서귀포에 왈종 화백은 작업실 겸 ,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도자기를 빚어 원하는 건물 형태를 만들어 보았 그 후 스위스 건축가와 공동 작업으로 건물을 지었다. 조선 백자의 부드러운 곡선과 독특한 동선이 매력적인 미술관이다. 1층에는 수장고와 도예실이 2층에는 전시실이 3층에는 작가의 작업공간과 명상실이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민이라 저렴하게 티켓을 구매하고 전시를 보러 2층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계단에는 직접 점토로 만든 모빌이 걸려있었는데 너무 앙증맞고 귀여웠다. 2층에 올라서자마자 느껴지는 밝은 채광과 창가 밖으로 보이는 서귀포의 풍경은 미술작품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고 있었다. 그의 작품과 따뜻한 햇살 정말 잘 어울린다. 우리는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공들여 관람했다. 제주의 모습이 담긴 밝고 따뜻한 색감의 작품들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제주생활의 연기와 중도





이왈종 화백님은 제주에 머물며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라는 주제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셨다. 회화는 물론 도예, 판화로 제주의 모습을 자유롭게 표현하셨다. 특히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꽃과 새, 물고기, tv, 자동차, 동백꽃, 노루, 골프 등을 통해 행복과 불행, 자유와 구속, 사랑과 고통, 외로움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었다.




그의 그림에서 내가 좋아했던 부분은 누구라도 제주의 모습임을 알 수 있던 그림 가득 찬 동백꽃, 그 안에 빨간 지붕의 집 한 채,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고나 할까.  특히 그의 그림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림에 요가, 골프 모습이 곳곳에 들어가 있었다. 왈종 화백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나 물질적인 것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그 자유로움이 멋있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동차와 골프는 제주에서 살아가는 화가의 삶과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쓰이는 소재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2층의 전시를 보고 나오는데, 커다란 액자 가득 이왈종 화백의 마음이 담긴 글 보았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제주에 정착하여 20여 년이 넘게 그동안 나는 <제주 생활의 중도와 연기> 란 주제를 가지고 한결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도대체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오는가 만을 깊게 생각해왔다.

인간이란 세상에 태어나서 잠시 머물다 덧없이 지나가는 나그네란 생각도 해보았고 세상은 참으로 험난하고 고달픈 것이 인생이란 생각도 해봤다.

살다 보니 새로운 조건이 갖춰지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또 없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들에서 연기라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중도와 더불어 그것을 작품으로 인생을 걸었다.

사랑과 증오, 탐욕과 미움, 번뇌와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 모두가 다 마음에서 비롯됨을 그 누구나 알지만 말처럼 그렇게 마음을 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마음이 내재하는 한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흰머리로 덮여가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행복과 불행, 자유와 구속, 사랑과 고통, 외로움 등을 꽃과 새, 물고기,  TV, 자동차, 동백꽃, 노루, 골프 등으로 표현하며 나는 오늘도 그림 속으로 빠지고 싶다.

                                                                                                    -이왈종 화백







그의 글은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내가 종종 얻는 마음의 병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로 인해 때로는 한 달씩 기침이 멈추지 않기도 한다. 작가님의 말한 대로 슬픔, 기쁨, 행복, 불행 모두가 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데! 그 마음을 비우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 70대 거의 80이 다 되어 가시는 왈종 화백께서도 마음을 비우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씀하시는데, 겨우 삼십 대인 내가 어찌 벌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지금 나는 제주에 살면서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있다. 오늘 왈종미술관의 방문은 나의 생활의 중도와 연기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이  내게 와닿아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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