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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18. 2022

제주에서 미술관 1.

1. 기당미술관

얼마 전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십몇년 전 피렌체에 가서 쥰세이와 아오이의 흔적을 찾겠다고 피렌체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겨우 보름 동안의 배낭여행에서, 유럽의 나라들을 더 많이 돌아다니겠다고 바쁘게 움직였었다. 그래서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까지는 어떻게 다녀왔는데, 이탈리아 피렌체에 갔을 때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 있다던 우피치 미술관을 가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너무도 유명했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주인공 쥰세이와 아오이는 10년 후,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날은 바로 5월 25일이다.  2003년에 개봉한 영화를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매년 5월 25일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기 때문이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왜 그날 결혼했어?" 물어보면 "그날 쥰세이와 아오이가 다시 만나기로 한 날이잖아"라고 대답할까 보다. 



마침 내년이 결혼 10주년이라, 둘이 손 잡고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오르자는 얘기를 나눴다. 거기까지 간 김에 함께 '우피치 미술관'에 다녀와야겠다. 이탈리아 피렌체라니! 2년이 넘도록 여행을 못 다녔더니 내년에 여행을 갈 수는 있는 걸까 의심이 들긴 하지만 기대해봐야지.







지금 당장 피렌체로 갈 것은 아니기에, 제주에 있을 때 이곳의 미술관을 많이 방문하고 싶다. 제주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도, 미술관도 꽤 많다. 그중엔 관광객들도 많이 가는 유명한 미술관도 있고, 규모가 작아서 제주도민이나 오래 머무는 이에게 반가운 작은 미술관도 있다.  대표적인 크고 유명한 미술관에는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현대미술관, 이중섭 미술관, 김영갑 갤러리, 김창렬 미술관 등이 있다. 이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미술관을 다녀보는 것은 어쩌면 제주에 사는 또 다른 행복이다. 




제주의 화창한 날, 서귀포에 위치한 미술관에 가는 길. 

그 순간은 설렘이다.




제주 서귀포, 기당 미술관





오늘 찾은 곳은 기당미술관이다. 기당미술관은 서귀포시에 자리한 시립 미술관이다. 제주시 우리 집에서부터 기당미술관은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곳은 서귀포 예술의 전당과 삼매봉도서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나의 소소한 일상'이라는 주제로 기당 미술관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당미술관이 인상적이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미술관 앞으로 한라산이 훤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아서 그랬을까? 물론 제주 전역에서 보이는 한라산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명 : 숨비소리





기당미술관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숨비소리'이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밖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라고 한다. 해녀 할머니의 얼굴을 너무도 생생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이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원형의 모형을 가진 기당미술관 내부가 참 맘에 들었다. 아담한 규모에 적당한 숫자의 작품이 전시되어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오래도록, 자세히, 여유 있게 그림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제주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표선 횟집과 민박(한윤정) , 제주인- 해녀와 오토바이(김해숙)가 그러하다. 사진을 찍어서 붙였나 싶을 정도로 세부적으로 잘 그렸던 표선 횟집 입체작품, 나름 간판에 불도 켜주는 세심함도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전시된 오토바이를 함께 타는 해녀 두 명의 모습이 정말 귀엽게 느껴졌다. 




왼) 작품명 : 표선의 횟집과 민박                오) 작품명 : 제주인  : 해녀와 오토바이





 기당미술관의 마지막 공간에는 이곳의 명예관장님 이시던 '변시지' 작가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 속에는 제주의 곳곳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작품의 색도, 작품들의 느낌도 거의 비슷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작품들 속에는 사람 1명과 나귀 1마리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고 힘없고 야위어 보여 자꾸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을 표현하던 작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미술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미술관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유명한 작품을 봐서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도 황홀하다. 때때로 마음을 울리는 그림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감동받고, 위로받기도 한다.  나에게 미술 작품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어느덧 5개월, 제주도 생활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앞으로의 제주살이는 교양과 품격을 높이는 시간이 더해지면 좋겠다. 역시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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