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으로는 오겹살을 먹었다. 늘 지나가다 봤던 정육점에 한번 들려보고 싶었는데, 마침 오겹살 세일을 한다고 적혀있다. 집에 돌아오던 길, 한번 사볼까 들어갔다가 당연하게 저녁 메뉴는 오겹살로 정해졌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오겹살은 겉바속촉 정말 맛있었다. 오물오물 거리는 아이의 입을 보며, 맛있다 연신 외치는 남편을 보며 오늘 저녁 메뉴도 잘 골랐구나 생각했다. 역시 저녁밥상에 고기가 빠지면 섭섭하지...
얼마 전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를 시작하니 요가의 모든 것이 관심 대상이다. 가장 가깝게는 요가 옷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상의, 하의 한 벌 뿐인 내게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도 당연히 들었고, 더불어 요가 매트도 내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도서관에 갔더니 요가에 대해 쓴 책도 눈에 들어온다. 그 책은 정우성 씨가 쓴 '단정한 실패'라는 에세이다. 배우 정우성 씨가 쓴 줄 알았는데 겉표지만 봐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곳에서 '나 이제 고기 못 먹어?'라는 챕터를 읽게 되었다. 태어난 소, 돼지, 닭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만을 위해서 살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들에게 병이 돌아 살처분되는 풍경 등등... 적당하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외면해온 것들. 거의 매일 같이 고기를 먹으며 맛있다고 외치던 내 모습과 상반된 모습이다. 조금만 부지런하게 검색하면 나는 절대 앞으로 육식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전 집에 있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도 제목을 보면서 들춰보기가 무서웠으니까. 내가 푸아그라를 먹는 것도, 캐비어도 먹는 것도 아닌데 이것은 분명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요가를 하면서 기대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 같다. 비폭력 철학. 외면하고 무시해왔던 것들에게 다가서고 그로 인해 내가 변화하는 것.
사촌 오빠의 기일이 다가온다. 살아있을 적 오빠는 족히 10년 전에 비건을 시작했다. 지금보다 덜 이슈가 되었던 그때부터 채식주의자의 삶을 시작했다. 오빠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주말이면 명상을 하러 떠난다고 했다. 그로 인해 친척들 사이에 늘 이슈이거나 걱정의 존재였다. 그렇게 지내던 오빠는 어느 날 위에 구멍이 나서 입원을 했다. 잘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빠는 고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결국 고기에 승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에 구멍이 난 것은 오빠에게 아주 작은 일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백혈병에 걸렸다. 사람들은 오빠가 아픈 것이 모두 고기를 먹지 않아서라고 했다. 명상이나 하는 사이비에 빠져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나도 몰랐다. 오빠가 왜 아픈지, 왜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하필 그때 채식을 시작한 것이 아주 작은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건이 되었다고 백혈병이 걸린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 오빠가 떠난 후에야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자주 못 본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었던 적이 없다. 왜 채식을 하는지, 왜 명상을 시작했는지 물어봤더라면 이렇게 애매모호한 글이 아니라 정확히 마침이 있는 글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이다.
지금은 이렇게 고기를 많이 사랑하는 내가 어느 날 비건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건강을 위해서라면, 내 몸을 생각한다면 절대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은 당장에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당장 너는 고기를 먹지 마!라고 하면 그것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데, 이것도 한 때 일 수도 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도 더 나이 들어가면 '왜 먹었을까' 후회할 수도 있고 말이다. 아직은 정말 모르겠다. 요가를 한다고 비건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조금씩 가까워질 그 모습이 기대되기는 한다. 건강한 재료를 선별해서 먹는 일, 그리고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위한 방법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