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운 빵을 먹는다

by Blair

운동을 가지 않는 날의 루틴은 이러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학교 갈 준비를 시킨다. 아침을 먹은 아이가 양치질을 하고 화장실에 가있을 동안 거실의 청소기를 빠르게 돌린다. 이렇게만 해도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깨끗한 거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렇게 하려면 전날 밤 잠들기 전에 거실 정리는 필수이다.



준비를 마친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학교를 간다. 아이 혼자 갈 수 있는 학교라면 좋겠지만 차가 은근 많이 다니는 길에다 도보가 따로 없어서 아직 혼자 다니긴 쉽지 않다. 그렇게 십여분을 내려가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리고 다시 십여분을 올람 집으로 돌아온다. 이천보 가까이 되는 적당한 거리이다. 그런데 벌써 더워진 날씨에 땀이 꽤 난다. 거의 다 왔을 무렵엔 쓰고 있던 마스크도 벗어버린다. 숨 쉬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 때문이다.



오자마자 보일러를 온수 버튼을 눌러놓고(예열시간 필요) 에어프라이기에 냉동실에서 꺼낸 빵 생지를 넣는다. 욕심내지 않는다. 하루 딱 한 개다. 그리고 샤워를 하러 간다. 빵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22분 내외이다. 샤워를 빠르게 하고 나와 옷을 입고 로션을 바르고 물을 마신다. 그리고 잠시 후에 빵이 다 구워졌다고 삐삐삐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컵을 꺼내 2층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간다. 오늘을 뭘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커피의 맛을 고르면 좋으련만 남아있는 캡슐 중에 대충 하나를 골라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접시를 꺼내 갓 구워진 크로와상을 꺼낸다. 이때 나는 빵의 향기가 참 좋다.



지금 이대로 먹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안에 있는 초코가 아직 뜨거워 혀가 데일지도 모른다. 잠시 접시 위에 놓고 식히고 그 후에 먹으면 된다. 크로와상이 식기를 기다려 노트북을 꺼내놓고, 유튜브에서 오늘의 음악을 고른다.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잘 구워진 초코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문다. 음~ 역시 이 맛이야.




크로와상 커피의 조합은 훌륭하다



실은 조식으로 빵으로 먹는 것이 별로일 때가 있었다. 빵을 아침으로?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지. 그런데 요즘은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다. 가볍게 먹는 아침의 즐거움. 사실 안에 초코가 들어있는 크로와상이라 그렇게 가볍지는 않은데 빵 한 개, 커피 한잔으로 적게 먹는 느낌이라 몸은 가볍다. 대신 버터와 초코가 가득한 칼로리 높은 빵이니 매일 먹으면 살이 얼마나 찔까 염려되기도 한다.



본투비 빵순이는 아닌데 먹을 빵을 하나하나 신중히 골라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평일이나 주말에 먹는 식사 빵은 늘 구입해 놓고, 냉동실에 얼려두고 먹고는 한다. 어떠한 빵들은 냉동실에 넣어놔도 맛이 그렇게 변하지 않으니(미묘한 차이) 상관없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크로와상이 너무 먹고 싶었다. 어디서 사 먹으면 맛있을까? 그러다 마트에서 외국에서 자주 가던 카페 브랜드의 빵이 생지를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마침 세일까지 하고 있었다. 그동안 마트에 들렀을 때 수많은 빵의 생지들을 봤지만 이것을 사다가 구워 먹는 것이 날까? 아니면 때마다 맛있는 빵을 사 먹는 것이 날까? 의 고민이 돼서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맛이 굉장히 궁금했다. 그래! 집에서 갓 구운 빵 냄새를 한 번쯤 풍겨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서 구매해 봤다. 그런데 웬걸! 완전 성공적인 구매였다.



오늘도 크로와상을 구웠다. 한 번이 무섭지 한 번 사보고 나니 그 이후로 꼭 사게 되는 마법. 갓 구운 빵은 마치 내가 반죽해서 만들어 넣은 느낌마저 들게 하고, 간단한 과정을 통해 방금 만든 빵맛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새로운 세계의 시작.





오늘의 크로와상




오늘은 갓 구운 빵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커피도 당연히 한잔 내렸다. 빵과 커피를 우물우물 먹다가 고개를 들어 정원을 본다. 마음 복잡한 일이 있었는데 (오늘이 그렇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그 정도는 잊고 살자. 너무 걱정말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다.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마침 초코도 내 입속에서 녹고 있다. 정말 살살 녹네... 이 맛을 이제야 알다니!




갓 구운 빵을 먹는다는 의미는 분명 지금 나의 삶의 만족이 아닐까.




앞으로도 자주 빵을 구워 먹어야겠다. 당연히 반죽을 준비해서 구워 먹는 빵을 꿈꾸기는 어렵고, 얼려있는 빵 생지를 사다가 그때그때 맛있는 빵을 구워 먹는 것으로 만족해 봐야겠다.



삶이 충만해진다. 때론 이런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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