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집에는 비가 샙니다.

by Blair

오늘 제주는 비가 내린다. 며칠 전에도 비가 왔고 오늘도 비가 온다. 눈이 오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비가 오면 긴장이 된다. 요즘 집에서 비가 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방이나 거실에서 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방이나 거실에서 비가 샌다면 얼마나 슬프겠나. 참말로 다행이다.



우리 집 부엌에는 연결된 창고가 하나 있다. 식료품도 보관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보관하는 그런 곳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비가 샌다. 처음엔 비가 한두 방울 똑똑 떨어졌는데 이제 많이 떨어진다. 지난번 하수구를 뚫을 때 보수 공사를 조금 했는데 그때 잠시 새지 않다가 그 이후로 다시 계속 새고 있다. 심지어 요즘은 점점 더 많이 새는 것 같다.



집에 큰 대야가 한 개가 있는데 여러모로 잘 쓰는 중이다. 이불 빨래할 때도 쓰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 받이 대야로도 사용한다. 며칠 전 비가 많이 왔는데 비가 새는 그곳 아래 큰 대야를 가져다 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곳에 꽤 많은 양의 비가 모여있었다. 어제 밤에도 대야를 받쳐놓았다. 밤새 모인 비 양이 꽤 되었다. 오늘도 종일 비가 올터니 집에 돌아가면 아마 더 많은 양이 모여있을 것이다. 이 빗물을 모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하필 물 떨어지는 부분이 전등 아래라 비가 오면 형광등을 켤 수가 없다. 그런데 자꾸 잊고 전등을 켜는 바람에 비가 오는 날엔 전원 위에 글을 적어둔다. '전등 켜지 마시오' 어느날 모르고 전등을 켰다가 감전이 되지 않을까 조금 두렵다.





물받이 대야와 경고 문구




그런데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비가 샜기 때문이다. 그때는 1층이 아니라 2층이었다. 처음부터 비가 새니까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놀러 온 엄마도, 친구도 우리 집에 비가 새는 것을 걱정했다. 더 큰 문제는 비가 새면 2층 거실이 누전 되어버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곳의 전등도 켤 수가 없다. 그러나 비가 그친 며칠 후 다시 두꺼비집에 가서 전기를 올리면 다시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한다.


웃기게도 바람이 많이 불면 비가 새지 않는다. 요즘엔 비가 올때 2층에 올라가도 비가 남아있는 흔적이 없었다. 의아했다. 이제 2층에서는 비가 안 새려나 싶었다. 그런데 어제 2층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방심한 사이에 그곳에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이전에 가져다 두었던 수건으로 물을 처리하고, 이곳에는 작은 대야를 가져다가 아래에 두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오늘 2층 거실도 불을 못 쓰겠네.



다행인 것은 집주인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그전 집주인에게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하고 매매했다고 했다. 당했다. 심지어 지난번에 공사를 했는데도 계속 비가 샌다고 했다. 걱정이다. 아마 우리가 이 집을 나가면 다시 대공사가 시작될 것 같다.








비가 새는 집에는 처음 살아본다. 2년마다 집을 옮겨가며 살다 보니 다양한 일을 겪게된다. 이전 집에서는 변기가 넘쳐흘렀고, 그 전전 집에는 모기가 들끓었고... 그래도 비가 새거나 벌레가 엄청 많거나 특히 이렇게 춥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완벽한 우리 집은 없는 것일까?



그런데 입주전 비가 샌다고 고지하지 않은 집주인 잘못일까 아니면 비가 새느냐고 물어보지 않은 세입자 책임일까...ㅎㅎㅎ 잘 모르겠다. 비가 새다니... 집에서 비가 새다니 비가 올 때마다 걱정이다. 특히 제주 특성상 어느 계절의 어떤 때에는 비가 자주 오는 날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가슴 떨린다.



제주의 낭만은 주택에 살면서 깨진다. 낭만은 역시 꿈으로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그래도 주택에 살아본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세상엔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족하다.











집에 비가 샌다고 비가 오는 것 까지 싫어할 수는 없다. 나는 비오는 날을 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주 우리 집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없이 행복해진다. 왠지 주택에 살며 비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비가 온다고 부침개를 굽고, 혹은 아이와 밀가루 반죽해서 수제비를 만들어 먹고 있자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우리 가족이 비 오는 날 모여 앉아 제주 집에 바라보던, 비 내리던 풍경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 어느 날에는 우리가 살았던 제주집이 비가 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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