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비 오는 날이었다. 아이를 씻기려고 온도를 온수에 맞추었다. 잠시 후 물이 조금 따뜻해졌겠지 하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추운 계절엔 창문을 꼭꼭 닫고 씻기는데 요즘은 날씨가 좋아져 욕실의 창문이 거의 열려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냄새지? 하고 생각 중인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요". 어? 큰일이다.
이것은 분명 기름냄새였다. '보일러 기름 냄새' 말이다. 등유가 타면서 나는 그 냄새가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냄새에 예민하기도 하고, 비가 와서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는 날이라 그랬다. 원래 이렇게 심하게 냄새가 났던 적이 없던 터라, 서둘러 밖으로 나가 보일러 실로 가봤다(보일러 실은 집의 뒤쪽 바깥에 있다).
그랬더니 세상에나! 보일러 연통이 터져있었다. 그래서 연기가 밖으로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집안에서 기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순간 종종 뉴스에서 이산화탄소로 질식되어 죽었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우리도 모르게 이산화탄소에 질식되는 게 이런 징후 다음일까? 생각하고 나니 왠지 무서워졌다.
최초 연통이 터진 모습
아무튼 그다음 날, 주말인데 다행히도 몇 달 전 보일러 배수관이 터졌을 때 고쳐주셨던 AS 기사분이 와주셔서 빠르게 연통을 교체할 수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연통만 바꾸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as기사분이 이 보일러가 됐다 안 됐다 한다며 아마 1~2년 정도 후에는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1,2년 후면 나는 이 집을 떠날 테니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보일러야! 그때까지만 잘 버텨줘!
세입자가 되어 산 이후로 매년 집을 고치고 있다. 지난 아파트에서는 변기가 막혀 (저층) 화장실에 똥물이 가득 차올랐던 적도 있고, 집 도어락이 고장 나서 새로운 디지털 도어락으로 교체하고, 자동버튼으로 누르던 안방 형광등이 고장 나 새로 바꾸기도 했다. 이것저것 교체하고 나니 세면대가 막히는 건 아주 평범한 일이었다. 그때도 집의 이곳저곳을 고치며 남의 집 살이는 역시 불편하고 귀찮네 하고 느끼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와 보니 주택의 고장에 비해서 아주 귀여운 수준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사는 제주의 주택은 비가 샌다. 부엌 옆의 창고에서, 그리고 2층 들어가는 입구에서 비가 새어 물이 떨어진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2층 방까지 비가 새며 침대 위에 물이 흘른 자국이 발견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전 집주인이 집을 팔 때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매매를 해서, 새로운 집주인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택은 고장 나면 대공사가 진행되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집에 비가 새는 것을 모두 제대로 막으려면(우리 들어오기 전에 손을 봤다는 얘기도 듣긴 했다.) 진짜 대 공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일단 이 주택의 고장 히스토리를 말해주면 처음에 들어오자마자 태양광이 작동하지 않아서 전기세 폭탄을 맞았다. 심지어 이 집은 전기로 쓰는 집이 아니라 등유로 보일러를 돌려 사용하는 집이라 더 황당했던 것 같다. 겨울 초입 전기세로만 25만 원쯤이 고지된 영수증을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래서 결국 원인이었던 태양광 기기가 고장 나 교체했다. 그것이 한 60만 원 정도 들었다.
중간에 보일러 배수관이 터져서 물이 솟구쳐 올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것은 부품만 갈면 되었다. 그리고 겨울 전기용품의 과한 사용량으로 방안의 스위치가 타버려 그것도 바꾸기도 했다. 정원의 잔디를 깎는 자동 기계는 들어올 때부터 망가져있어서 새로 구입했고, 거실의 특이한 형광등 교체는 도저히 우리 손으로 할 수 없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9월인가는 배수구가 막혀 자꾸만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그것을 고압세척하는 공사도 했다. 배관청소로만 50이 넘게 들었다.
그리고 엊그제 2주 만에 고친 연통이 다시 폭발했다. 이번엔 온수를 쓰려고 온수로 설정을 바꿔놓고 잠시 후 물을 트는 순간 보일러실에서 '뻥' 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가보니 흰 연기가 자욱하고 연통이 다시 터져있었다. as 기사분과 집주인에게 차례대로 연락하고, 일단 고쳐보려고 노력했으나 보일러를 교체하는 것이 낫다고 해서 새로운 보일러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비용이 무려 또 90만 원이나 들었다.
새로온 기름 보일러
이곳에서 무엇을 고치려면 각각의 as기사를 불러야 하고, 거리에 따라 출장비가 추가로 들기도 하고, 고치는 가격이 10~20 정도일 때도 있지만 50, 100 이렇게 들기도 하니 집주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될 것 같다. 이 커다란 집을 유지하며 사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다 보니 과연 주택에서는 몸과 마음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주택 내부와 외부를 관리하는 것에는 시간도 돈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주택이든 아파트든 세입자로서도 고치며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잔고장은 우리가 어떻게든 고친다고 해도, 큰 비용이 드는 일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집주인과 상의 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문제가 생겼을 때 집주인에게 연락해 고쳐달라고, 바꿔달라고 하는 것 또한 굉장한 스트레스이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는 세입자가 스트레스일까? 집주인이 스트레스일까? 아무튼 나는 현재 세입자로서 받는 스트레스를 말하고 있고, 집주인의 스트레스도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다. 솔직한 마음은 어서 집주인이 되어 차라리(?) 그 스트레스를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번에 결국 기름보일러를 교체하며 드는 생각은... 그것이 이곳에 내가 살게 되어 고장이 난 건지? 아니면 고장 날 때가 돼서 고장이 난 걸까 궁금해졌다. 나는 이 집에 와서 겨우 1년 반을 사는 동안 많은 것들을 수리해 놓았고, 앞으로 남은 기간 나는 대체 이 집에서 무엇을 더 고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하루 빨리 제주를 떠나야하나 싶어질때도 있다.
아무튼 집, 물건, 제품 등이라는 것이 결국 언젠간 고장 나고 소모되고 망가지기 때문에 이 순리를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당분간은 제발 아무것도 고장 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제발, 그만 망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