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제주도를 배경으로 했던 드라마가 히트한 적이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출현했던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이다. 아마도 육지에서 그 드라마를 보았더라면 분명 제대로 제주앓이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제주에 있었고 드라마 곳곳의 장소을 아는 척하면서 때로는 방문해 보면서 제주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띈 장면은 극 중 배우 한지민과 김우빈이 1박 2일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어느 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며 매우 신나 하는 모습을보여줬는데, 정말 행복해 보이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연기하고, 앉아있던 그곳의 배경이 너무 예뻐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서둘러 그곳을 찾아보니 그 섬은 가파도였다. 들리는 말로는 가파도는 4~5월 청보리가 피는 때에 가야 예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다시 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청보리가 피는 봄이 오면 꼭 그곳에 다녀오리라 다짐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의 가파도
올봄 부모님이 제주에 오셨다. 올해는 엄마와 제주에 있는 섬을 다 가보기로 했던 터라 이번에 오셨을 때 함께 가파도에 가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보리가 넘실거리는 4월이었기 때문이다. 미리 인터넷으로 배를 예약하고 가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 전날까지 비가 오는 바람에 날씨가 어떻게 될지 몰라 예약도 못해두고 당일 가파도와 마라도에 가는 선착장인 운진항으로 갔다.
다행히도 평일이고, 청보리가 핀 조금 이른 시기라 운진항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도착하자마자 배를 탈 수는 없었지만, 여유 있게 조금만 기다리면 탈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오기 전부터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기에 정말 다행이었다. 운이 좋았다. 블루레이라는 배를 타고 15~20분 정도면 가파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파도에 도착하니 선착장 바로 앞에 주차된 은색 차 한 대가 눈에 띈다. 가파도에 차가 많이 있나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었다 몇 시간 머무는 동안 차를 거의 못 봤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가파도라고 커다랗게 적힌 비석이 눈에 띄었다. 관광객들은 모두 그곳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인증 샷을 담아댔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가파도는 섬 최고 높이가 해발 20.5m, 전체 면적은 0.9㎢ 정도라 해안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한 바퀴 둘러보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혹은 자전거를 대여해서 전체를 도는 방법이 있는데 일단 청보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보는 것을 선택하였다. (가파도 배 티켓은 이미 돌아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꼭 개인별로 그 시간을 고려해서 움직여야 한다) 가파도를 한 시간쯤 걷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시간을 걸은 후 배 시간에 맞춰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는 입구에는 '청보리 밭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가는데 뿔소라 껍질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뿔소라를 색칠해 장식한 집, 가게등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보리 밭이 눈에 띄었다. 아직은 키가 완전히 자라지는 않았지만 이미 초록 청보리는 넘실넘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평지에 초록이 가득하니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네가 청보리구나! 만나서 반갑다!' 청보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오랜만에 제주에서 만난 부모님과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가파도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소망전망대’이다. 우리는 가파도의 중간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면 금세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소망전망대의 해발은 겨우 23m쯤 되지만 전망이 최고다. 그곳의 풍광이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예뻤던지, 나도 모르게 "우와~ 예쁘다, 여기 너무 좋다!" 하며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부모님과 가파도 소망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산방산과 한라산을 바라보며 청보리가 넘실넘실, 유채꽃이 흔들흔들하던 가파도가 자꾸만 눈에 밟힐 것 같아서 벌써부터 아쉽다.
평화로움 그 자체 '가파도' 산책길
길을 지나오다 가파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었다. 수업 중이라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옛날 우리 엄마가 다녔을법한 그런 규모의 초등학교가 정겹게 느껴졌다. 이 글을 쓰다 궁금해서 가파 초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전교생이 9명이라고 한다. 우리 아이가 제주에서 다니는 초등학교도 외곽에 있어서 한 학년에 한 반씩밖에 없는 소규모인 데다 한반에 몇 명 되지 않는데, 이곳은 전교생이 9명이라니 조금 놀랐다. 심지어 병설유치원도 운영되고 있었다. 요즘은 육지에도 아이들이 줄어들어 폐교하는 학교들이 생기고 있어 안타까운데... 부디 가파초등학교에 계속 아이들이 있어서 오래도록 건재하길 바란다.
한참을 산책하고 어느새 가파도에 도착한 항구의 반대편까지 걷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밥 먹으러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빠 엄마 여기 맛집인가 봐요 우리도 점심 먹고 갈까요?" 솔직히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가파도라는 작은 섬에 식당이 많을 리 만무했기에, 시간이 되었을 때 들려서 먹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뿔소라가 올라간 해물 짬뽕이 유명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해물짬뽕을 주문하고 먹고 있었다. 손님이 워낙 많아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해물짬뽕을 만날 수 있었다. 비주얼이 정말 최고였다. 우린 이 순간을 놓칠세라 '청보리 막걸리'를 주문했다. 가파도에서만 먹어볼 수 있다는 청보리 막걸리가기대되었다. 막걸리를 흔들어 한잔 하는 순간! 하루의 피로는 사라졌다. 이제야 막걸리 맛을 느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니 쑥스럽다.
가파도도 식후경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남은 가파도 섬의 반바퀴를 걸었다. 그냥 쭈욱 걸어가면 다시 가파도의 처음 선착장이 나오는 터였다. 30분 남짓 걸리는 그 거리를 천천히 여유 있게 걸었다.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해변도로였다. 게다가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그 해변로를 걸으며 마지막까지 가파도를 마음에 품을 수 있었다. 참 평화로운 곳이었다.
제주의 섬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아직 그 모든 섬을 가보지 못한 내가 과연대답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분명 제주 각각의 섬이 모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 나의 원픽은 가파도이다. 제주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꼭 청보리 시즌이 아니더라도 가파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제주에 와서 섬을 가보고 싶다면 가파도를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