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Jul 11. 2024

친정으로 여름휴가

 

지난겨울 육지에서 한 달 하고도 반을 머물렀다. 초반에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니 피곤했다. 이제 그만 우리 집에 가고만 싶어 하루빨리 제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러나 제주로 돌아와 지내는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육지, 정확히는 친정이 그리워서 눈물이 났다.



육지에 살 때는 언제라도 친정이 그리워질 때면 달려갔다. 정말로 달려간 게 맞다. 차를 끌고 달려가기도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기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서울 생활에 지칠 때마다 친정에 가서 며칠이고 푹 쉬고는 충전해서 되돌아오고는 했다.



그러나 제주에 와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도통 친정에 가서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다. 가끔은 시댁도 친정도 머나먼 이곳에서 내가 왜 살고 있는 건가, 차라리 이곳이야말로 자유롭게 오고 가기 어렵고 힘든 해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며칠 전 급작스럽게 친정을 가게 되었다. 실은 다른 일이 생겨 육지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그 김에 친정에 들러서 하루 자고 오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혼자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게 되었다. 물론 처음은 별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남편도 아이도 없이 친정에서 1박 2일을 지낼 수 있어서 어찌나 좋았는지 모른다(같이 있는 것이 좋지만 혼자도 참 좋다).





요즘 제주도는 장마기간이라 오전에 비바람이 많이 불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염려했었다. 게다가 친정도 비가 쏟아지는 진다는 얘길 듣고 조금 걱정 도 되었다. 다행히도 그때를 잘 피해서 무사히 잘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도 비가 잠깐 소강상태였다.



공항으로는 아버지께서 마중 나와 주셨다. 곧바로 친정집으로 갔다. 잠시 반갑게 인사를 한 후 거실에 티브이를 틀어놓은 채 한참을 각자 다른 행동을 했다. 같은 공간에 따로따로 내가 원래부터 계속 집에 있었던 마냥, 아빠엄마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우리가 오자마자 주인공이 돼버리는 시댁과는 완전히 다른, 정말 우리 집 도착한 것 같아서 혼자 막 웃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김치를 만들 재료를 사러 나갔다. 겨울 김치를 가져가겠다는 나에게 이왕이면 여름 김치도 함께 보내주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열무재료와 오이김치재료를 사 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재료를 손질했다.



평소의 나라면 재료손질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지만 오랜만에 친정방문인 데다, 아이도 없으니 왠지 여유로웠다.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나 재료 잘 다듬지? "

"응~ 잘하네~"

"집안일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도와주게 되었네, 미안해 엄마"




파도 다듬고, 부추도 다듬고, 고추도 썰고, 당근도 양파도 썰고... 눈이 매웠다. 그 정도는 괜찮았는데 결국은 손에 캡사이신 화상을 입었다.  저녁 내내 손을 물에 담가 열감을 제거해야 했다. 결국 손에 약을 잔뜩 바르고 잠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양념을 오이안에 쏙쏙 넣었다


버무리기전 열무







가장 좋았던 것은 원가족인 아버지, 어머니, 오빠, 나. 렇게 넷만 모여 식사를 한 일이다. 아이들이 이 정도 크고 나서야 어른들끼리 만나 다시 밥을 먹는 시간이 왔다. 첫 조카가 14살이니 14년 만일까? 후로는 나에게도 항상 아이가 있어서 늘 함께 다니다 보니 이렇게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도 며느리, 사위까지 함께 먹어도 좋을 식사였지만 오랜만에 우리끼리 먹으니 더 좋았다. 오랜만에 누군가 지어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를 나누니 참 행복했다. 잠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같아서 정말 좋았다. 아무 걱정 없이 아빠 엄마 곁에서 안온하게 살던 삶이 생각나 자꾸만 그리워졌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꽉 찬 1박 2일을 보내고 나니 마치 여름휴가를 보내고 온 것 같았다. 사실은 2박, 3박 아니 더 오래도록 지내고 싶었으니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삶이 있으니 다시 추석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주 못 보니 더 애틋한 사이가 된 걸 수도...




꿈같은 1박 2일의 여름휴가였다.

또 가고 싶다. 빨리 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엎드려 밥상 받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